방학이 주는 사치

by 김준식

방학이 주는 사치, 하루 종일 엄청난 세계 속에서 노닐다.


『쇼펜하우어와 우파니샤드』의 글을 쓰기 위해 우파니샤드를 공부하니 놀랍게도 그 안에 장자 이야기와 교점을 자주 발견한다.(내 머리에 들어있는 장자 이야기들이 우파니샤드 이이기와 同調(Tuning)를 일으켰는지 모른다.) 장자 이야기와 우파니샤드의 관계를 밝혀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아마도 장자가 시간적으로 뒤에 등장했으니 분명히 연결고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은 쇼펜하우어에 집중하기로 하고,


『께나 우파니샤드 Kena Uaniṣad』에 이런 말이 나온다.


“견해를 가지지 않은 자, 그에게 앎(지혜)이 있다. 견해가 있는 자, 그는 모른다(무지). 구분하여 아는 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며, 구분하여 알지 않는 자들에게는 매우 잘 알려진 것이다.” 알쏭달쏭한 말이다. 우파니샤드의 모든 것은 시적 운율을 지닌 신의 음성, 즉 ‘슈루티’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불교의 인식론과 동양 사상의 인식론에 근본적인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일단, 『장자』 徐无鬼(24편)에 우파니샤드의 이 구절과 비슷한 말이 있다.


則其解之也 似不解之者 其知之也 似不知之也 不知而後 知之 (그러니) 이 (之-대명사)道를 이해하고 있는 자는 마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이고, 그 道를 알고 있는 것도 역시 아무것도 알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알지 못한 뒤라야 (비로소) 道를 알게 되는 것이다.


『장자』 天道(13편)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世人 以形色名聲 爲足以得彼之情 夫形色名聲 果不足以得彼之情세상 사람들은 모양과 색깔, 이름과 소리만으로 충분히 저(之 – 대명사) 도의 實情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양과 색깔, 이름과 소리로는 틀림없이 도의 실정을 알기에 부족하다.


또한 노자 56장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知者不言 言者不知(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다른 표현이지만 내용은 비슷하고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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