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에 대한 생각

by 김준식


1. 교육과정의 변천


국가 중심의 교육과정을 만들고 그것을 유지한 지 128년(갑오경장을 기준으로 할 때)이나 되었다. 지금 2022 교육과정이 이미 설계를 마치고 각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5년 시작)


내가 교직에 첫 발을 내디딘 1987년은 제5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던 해였다. 5차 교육과정은 ‘통합 중심 교육’이 키워드였다. 하지만 나는 처음 교사를 시작하던 그 시절 교육과정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국가 중심의 교육과정은 다가올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 주요 목표로 한다는 것과 단위 학교 별로 몇 개의 과목과 그 과목에 대한 단위 수 등을 법제화하여 대한민국 내의 모든 학교가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6차는 21세기를 대비한다고 하면서 ‘수학능력시험’(1994년 시행)이라는 괴물을 창조했고, 7차는 '자율과 창의성'을 기조로 하여 교육 주체가 참여하는 것을 표방한 최초의 교육과정이었다.


7차 이후는 문명의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수시 개정으로 바뀌면서 교육과정이 고시되는 년도를 교육과정 앞에 놓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2009년 12월에 고시된 교육과정은 2009 교육과정이 되었다. 2009 교육과정의 핵심은 ‘교과 집중 이수제’였다. 2009 교육과정은 각론이 총 6번 부분 개정되었다.


2013년 개정을 끝으로 2009 교육과정은 끝이 나고 2015 교육과정으로 진행되었는데 이때 현장 교사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유는 ‘문, 이과 통합’이었다. 하지만 핵심인 ‘문, 이과 통합’은 지금을 기준으로 보면 통합이 이거였나? 싶다.


2022는 시작 연도가 2025년이다. 주요 의제는 고교학점제와 급변하는 미래를 대비하는 교육과정이다. 지금은 각론 작업이 진행 중이다. 고교 학점제가 핵심 키워드이다.


2. 학교 교육과정


단위학교에서 교과서를 중심으로 교사와 학생이 수업을 하기 위해 앞서 이야기한 국가 중심 교육과정을 기초로 시도 중심 교육과정이 편성이 되고 다시 단위 학교의 특성에 맞게 시간과 편제를 조정한다.


60년대 태어나 70년대에 초중고를 마친 나와 같은 세대(앞 세대를 당연히 포함해서)는 학교가 없으면 교육을 받을 곳이 없었다. 시설과 도구가 전무한 상황에서 학교는 우리에게 엄청난 장소였고 학교 교육과정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우리는 학교에서 우리가 아는 대부분을 배웠고 그 바탕에는 국가 중심 교육과정이 있었다. 거의 20개를 육박하는 교과목을 통해 우리는 그나마 그 당시를 살아갈 지식과 다가올 미래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였고 학교는 그러한 교육과정의 수행에 매우 충실한 담당자였다.


7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까지는 이런 상황이 비슷했지만 8~9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부터 조금씩 변화가 있었고 마침내 2000년대 출생한 지금의 아이들에게 이전 세대의 학교와 교육과정은 그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갈 것인가에 대한 예측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감히 예측해 보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무엇인가를 배우고 익히는 장소라기보다는 인적 네트워킹이 이루어지는 곳, 어쩌면 그 마저도 큰 의미가 없는 장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아이들은 개인이 가진 엄청난 기기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과 교류하고 있는데 국가 중심 교육과정이라는 낡은 틀에 의해 순차적으로 전달되는 지식들은 어떤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 이미 그런 일들은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고 체계적이고 순차적인 교육과정과 갈등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3. 철옹성


솔직하게 말하자면 지금 대한민국 초중고 교육과정의 최종 목표는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이다.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할 뿐이다. 엄격하게 서열화된 대학에 아이들을 보내는데 그 도구로 쓰이는 것이 현재 초중고 교육과정이라니.... 좀 과한 표현인가?


좋은 대학은 결국 좋은 직장을 보장하고 덤으로 쓸만한 인맥도 제공한다. 그러니 아이들과 부모들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애를 쓴다. 그렇게 현재 초중고 교육과정은 대학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국가 교육과정의 목표처럼 ‘자율’과 ‘창의성’을 가진 ‘통합 형 인재’, ‘문 이과’를 넘나드는 ‘통섭형 인재’보다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 생각이다.


여기엔 대학이라는 철옹성이 있다. 철옹성이 될 수밖에 없는 데에는 뫼비우스 띠처럼 끝없이 순환되는 묘한 인과관계가 있다.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조정하고 각론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가지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국내 유명 대학의 학자들이다. 이들은 국가 교육의 백 년의 대계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으로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있는가? 2015 교육과정, 고등학교 사회과 교육과정 설계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한 나의 경험에 의하면 고등학교 사회과(정치, 경제, 지리, 법, ….)의 각 영역별로 교수님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수호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을 보면서 국가 교육과정의 편제가 대의명분보다는 어쩌면 이익에 의해 좌우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과목은 몰라도 지금도 여전히 사회과 과목(고 1 통합 사회)은 통합 교과서 안에 각 영역별로 전공에 따라 여러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은 하나의 교과서와 여러 선생님이라는 절묘한 교육과정을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통합과학도 마찬가지다. (규모가 큰 인문계 고교에서는 단원 별로 다른 선생님이 수업한다.)


아프리카 밀림에 사는 사자처럼 이렇게 영역을 다투는 이유는 대학 내에서 자신의 전공 학부나 과를 좀 더 키우고 싶은, 나아가 그런 학부나 과의 교수로서 좀 더 파워를 가지기 위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영역을 사수하려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다. 물론 모든 학문이 다 중요하다. 이해한다. 하지만 이 영역 다툼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통합교과서의 문제에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가 개입된다.


교육과정의 영역별 편제에 따라 교사 수급이 결정이 되고, 이 교사 수급의 문제는 대학에게 매우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영역을 지키지 못하면 당장 어떤 학과는 신입생을 줄여야 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인원이 줄면 교수 충원이 어려워진다. 각 대학에 있는 당해 학과로서는 매우 치명적이다. 그래서 각 교과별 교수님들은 자신의 영역 지키기에 사활을 건다. 영역을 지키려면 학문적 타당성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권력이 더 빠르다는 것을 이 판에 있는 사람들은 재빨리 알아차린다. (더 이상은 추측이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다.)


그 철옹성이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국가 교육과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전부 이렇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히 이런 부분도 있다. 그것도 분명하다.


4. 학교 교육과정의 미래


나는 미래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예단할 수는 없지만 향후 20년 이내에 지금의 국가 중심 교육과정의 판은 와해될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급격히 지식 환경이 변한다면 틀에 박힌 학교 교육과정의 유효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아이들이 알고자 하는 지식은 아이들이 가진 스마트 폰 속에서 손쉽게 알 수 있다. 교사보다 더 자세하게 연결 지어서 알려준다. 역으로 교사의 수업을 아이들은 스마트 폰으로 검정하는 시대다. 그러니 이런 교육과정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시험도 마찬가지다. 외워서 쓰는 답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답을 찾아 여러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생각하고 종합하며 연역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정답을 맞히는 객관식이 모든 시험에 지배적이다. 기억력 테스트인가? 저장의 능력 차이를 판별하는 것은 분명 아닌데 모든 제도는 여전히 거기에 촛점을 둔다. 물론 기초적인 암기는 분명 필요하다. 모든 지식이 암기를 바탕으로 한다는 말도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그 모든 이야기는 구 세대의 저항일 뿐이다.


학교는 이제 아이들에게 좀 더 다른 공간이 되어야 한다. 단순히 지식을 배우기 위해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2022 교육과정을 위한 네트워크에 참여 하면서 이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해 본다.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한 지 35년이 넘어가고 있다. 학교를 떠날 날이 곧 다가온다. 고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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