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이런저런 생각

by 김준식

주말, 이런저런 생각


1. 기준의 문제


내가 살고 있는 주위에 나와 동일한 생각, 동일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데 늘 나는, 혹은 우리는 모두 내 생각 같은 줄 알고, 모두 내 시선 같은 줄 알며 무 감각하게 살다가 문득 나와 완전히 다름을 느낄 때 좌절하거나 심지어는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세상이, 그리고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에 마음을 바꾸지만, 그 후 나의 마음은(나와 같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때문에) 내가 사는 세상이 그리고 사람들이 조금 서먹해지고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세상은 언제나 그러하다”는 것은 자고이래로 거의 진실에 가까운데 그런 면에서 진실은 늘 불편한 모양이다.


2. 극단적인? 혹은 편파적인?


맹자 공손추 상 제2에 이르기를 공손추가 묻는다. “남의 말을 안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편파적인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엇에 가려 있는지를 알며, 근거 없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무엇에 빠져 있는지를 알고, 사람을 망치려는 사특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정도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알고, 둘러대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이 처한 궁지를 안다. 이러한 나쁜 말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면 정치에 해를 끼치고 정치로 행해지면 나라 일을 해치게 된다. 성인이 다시 살아와도 내 말을 틀림없이 따르실 것이다.”


아이들과 토론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소수의 아이들 의견이 매우 편향적이라는 것에 놀랄 때가 많다. 흔히 말하는 극단적 표현을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들이 그러한 생각을 가진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얻은 정보의 대부분은 그들의 가정에서 횡행하는 말들과 유튜브 및 온라인 매체일 것인데 그 매체들 중 일부 극단적인 혹은 편파적인 의견들의 매캐한 독성이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준 것이다.


요즘 내가 가르치는 과목 단원이 '사회불평등'이다.


아이들끼리 토론하는 것을 옆에서 들어보면 흔히 말하는 극단적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극단적 여성 비하적 표현이나 외국인 비하, 그리고 여러 유형의 성 불평등에 이르는 다양한 표현들이 토론 사이를 오고 간다. 때로 개입해서 바로잡기도 하고 때로 그냥 두기도 한다. 다만 전체적으로 내용을 수집하여 같은 과목 혹은 여러 선생님들과 의논하는 자료로 삼는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기준이다. 어디까지 극단적인 이야기인지는 모호해진다. 하여 다시 모든 문제가 일순에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특별한 지점에서는 반드시 개입하여 생각을 전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 굳어진 사회에 대한 건강하지 못한 의견과 시선은 나이가 들어도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교사가 필요한 이유 중 하나가 다양한 세상의 의견과 관점을 이해하고 극단적으로 나아가지 않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3. 무지無知


(수업과 토론 장면에서) 내가 말하는 바가 늘 나의 의도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는 없다. 동시에 상대방의 이야기도 늘 나에게 상대방의 의도대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각자 특정한 수용의 막(필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해’라는 단어가 생겼을 것이다.


‘오해’의 핵심은 내 필터의 견고성에 있다. 필터의 유연하지 못함이 오해의 원인이라는 뜻인데,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이야기는 상대방의 몫이기 때문에 나의 오해는 온전히 나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오해는 나를 포함한 타인의 잘못(비율은 달라진다.)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경우에는 오해를 모두 상대의 잘못으로 몰아붙이기 일쑤다.


한편, '오해'의 가장 큰 원인은 각자의 필터 앞에 가로 놓여있는 ‘무지無知’다. 필터를 통과하기도 전에 여기서 먼저 상대의 의견이 조정, 분석, 좌초되고 만다. ‘무지’는 문자처럼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어떤 설명과 설득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는 상황'이 ‘무지’다. 그리고 심지어 그러한 ‘무지’를 기반으로 상대를 무시하고 상대를 비난하며 공격의 바탕으로 사용하는 것이 역시 ‘무지’다.


아이들의 수업에서도 이런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개입해서 설명하지만 교사의 권위로도 이 ‘무지’를 타파하는데 가끔 어려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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