於落花至無爲遂知止*
(떨어진 꽃으로부터 무위에 이르렀다가 마침내 그침의 완성에 이르니)
紅蕾然赤落 (홍뢰연적락) 붉게 맺혔다가 붉게 떨어지니,
生動一寂靜 (생동일적정) 살아 있음과 죽음이 같구나.
知止而不殆 (지지이불태)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고,
知足卽不忝 (지족즉불첨) 만족을 알면 욕되지 않으리니.
2022년 2월 28일 밤. 오후에 페친이신 서성룡님의 사진을 보다가 한 사진이 눈에 들어 글을 놓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드렸더니 흔쾌하게 수락하여 글을 놓는다. 동백은 피는 것만큼이나 지는 것도 대단히 감동적이다. 아름다운 사진 여러 장을 보았고 그중 한 사진에 글을 놓는다.
* 노자의 도덕경 제32장에서는 여러 가지 道家的 개념들을 엮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道는 이름이 없는데 이름 없음을 통나무에 비유한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통나무는 아무런 기능을 갖지 않는다.
또 통나무는 어떠한 형태도 없다. 다만 나무 그 자체일 뿐이다. 따라서 통나무는 도의 無形性, 혹은 궁극적 潛在性(잠재성)에 닿아있다. 이를테면 도의 무형성은 도의 이름 없음과 상통한다.
그다음 도를 정치권력의 행사에 비유한다. 이름이 없는 것은 기능이 없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그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이름이란 특정한 역할, 관직, 의무를 나타낸다. 이름이 없는 것은 특정한 업무가 있을 수 없다. 이름 없음은 거대한 자연에 의한 지배권을 이야기하며 아주 좁은 의미로 권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도에 의한 권력은 無爲로서 움직이기 때문에 ‘스스로 그러하다(自然).’ 자연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러운 복종으로 이끈다. 이러한 복종은 어떤 강압도 없으며 마치 제17장(悠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의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오로지 그러한 존재가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이렇게 해서 백성들은 그런 권력을 조건 없이 받아들여 자연이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생명이 번성하게 된다.
제32장의 끝에 이르면 ‘멈출 때를 아는 것(知止)’ 즉, ‘그침의 완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침의 완성’이란 탐욕, 열망, 중독에 빠지는 것을 회피하는 방법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도가적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