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첫 수업이다. 긴 긴 겨울 방학 동안 아이들은 2021년 배웠던 철학 이야기를 아마도 까맣게 잊어버렸을 것이다. 예상하고 있었고 또 어쩌면 이것이 순리일 것이다. '없다'라고 표현되는 것은 '있다'라는 것의 전제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자 無도 숲의 나무들이 완전히 타버린 상태를 나타내는 글자다. 지나온 그리고 다가올 나의 철학 수업은 뭔가 있었다는 아주 희미한 기억에 의존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시 새로운 기억을 아이들의 머릿속에 건설하고 또 건설하자는 것이다. 무너지면 다시 짓고 또 무너지면 다시 지어서 마침내 단단한 형태를 이룰 때까지 우리는 건설과 기다림의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삶에 스며들 것이다.
오늘은 2022년 한 해 동안 철학 수업 동안 자신의 이름으로 쓰일 위대한 철학자들의 이름을 고르는 날이다.(2020년부터 그렇게 유지해 왔다.) 기존의 이름에 약간의 새로운 이름을 추가했다.
2022년에 추가한 위대한 철학자 중에 Parmenides와 Heraclitus가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고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은 언제나 변한다고 말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명한 이야기, 즉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지수중학교 철학 교재 28p) 그런가 하면 파르메니데스는 우리가 눈으로 보는 세상은 가짜(허상)라고 생각했다. 즉 그는 우리가 변화라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이성을 가지고 실체를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파르메니데스가 생각한 세계의 참모습은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지수중학교 철학 교재 20p)
아이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시간이 지나 그 이야기가 無로 수렴하는 것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과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 본래 아이들은 아무런 지식이 없었는데 우리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가 본래의 모습이 드러났으니 이것은 파르메니데스의 변하지 않는 것에 가깝고, 아이들에게 잠깐 또는 한 때 지식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진 상황이니 끝없이 변화하는 상황으로 이해하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철학적 삶이란 삶의 아주 미세한 부분에서부터 거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놓지 않고 주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자세로부터 출발한다. 동시에 그 파악된 사실을 객관화시켜 반성하고 다시 주관적 실행에 이르는 과정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하며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