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답답한가!(2)

by 김준식


1. 자유주의


自由(스스로 自, 말미암을 由)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부터 계속되어왔다. 영어의 자유는 ‘Liberty’와 ‘Freedom’인데 약간의 차이가 있다. ‘Liberty’는 ‘ability to do as one pleases’(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능력)으로 풀이된다. ‘Freedom’은 ‘having the ability to act or change without constraint’ (제한 또는 제약을 바꾸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비슷한 의미 같지만 ‘Liberty’는 적극적인 의미가 강하고 ‘Freedom’은 다소 소극적인 의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해석들이 있어서 사용하는 방향과 목적에 따라 의미가 약간씩 달라지기도 한다.


근대적 의미의 ‘자유’는 인간이 충만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다. 근대 이전의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과는 다른 적극적인 삶의 조건으로 ‘자유’가 곧 근대 이후의 ‘자유’다. 헤겔은 인간의 역사를 ‘자유’의 전개 그 자체라고 이해하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즉 ‘자유주의’란 ‘자유’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모든 인간의 생활에서 이 ‘자유’의 실현을 추구하는 사상으로 풀이될 수 있다.


‘자유주의’는 근대사회의 가치 및 제도를 창출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또한 ‘자유주의’는 신분의 차이를 넘어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고,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보증하며, 인간은 결코 침범할 수 없는 권리(천부인권)를 지닌다는 것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유주의’는 ‘민주주의’ 입헌주의’ 그리고 ‘시장경제’ 등 정치, 경제제도와 결합하여 근대사회를 이루는 틀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자유’의 내용은 지극히 다양하고 ‘자유주의’에도 다양한 의미가 숨어있다. 일반적으로 표현되는 ‘자유주의’는 적극적인 가치나 생활양식에 대한 참여에서 출발하여 극단적으로는 집단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의미까지 확장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근대에 등장한 이념으로서 ‘자유주의’는 당시 ‘절대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또한 20세기 ‘파시즘’이나 ‘전체주의’에 항거하는 것도 ‘자유주의’의 목적이자 사명이었다. 가령 하이에크에게 ‘자유주의’는 전체적 설계주의, 즉 사회주의에 대한 대항이었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구속하는 집단적 권력에 대항하는 사상이라는 의미가 강한데, 그러한 경우에 기초가 되는 것은 자유의 근본적인 의미인 ‘자립’ 개념이다. ‘자유’의 본질은 자기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라이프니츠’가 말했듯이 ‘자기 결정’ 즉 ‘자립’을 ‘자유’의 근본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것은 ‘칸트’로부터 현대 ‘자유주의’ 사상가들이 가진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런데 ‘자립’을 기본적인 가치로 본다면 확실히 집단적 권력에서 해방되는 것을 ‘자유’의 요체로 삼을 수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자립’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층 적극적으로 정치 행동에 참여하여 ‘자립’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를 만드는 운동에 관여할 필요도 있고, 개인의 독립은 집단으로서의 나라나 공동체의 독립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적극적 참여가 요구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생각에 기초한 ‘자유주의’의 새로운 입장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단지 권력으로부터의 해방과 개인의 생명 및 재산의 보호를 주장하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자유’의 가치를 실현하고 또한 그것이 실현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입장이다.


이렇게 ‘자유’의 적극적인 측면을 중시하다 보니 개인의 ‘자유’보다는 집단의 ‘자유’가 더 중요한(자연스럽게 개인의 ‘자유’는 제한될 수밖에 없는) ‘사회주의’나 각종 ‘민족자결 운동’ 그리고 ‘파시즘’조차도 처음에는 ‘자유’를 실현하는 운동에서 파생되는 역설적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사회주의는 자본가로부터의 ‘자유’를, 민족자결주의는 외세(열강)로부터의 ‘자유’를, 파시즘은 역시 외세, 반민족 세력들로부터의 ‘자유’ 회복을 목적으로 하여 생성된 이념들이다. 특히 19세기의 독일, 이탈리아, 동유럽, 일본 등에서 특히 번성한 ‘내셔널리즘’(국가주의) 조차도 이러한 ‘자유주의’와 비정상적인 결합을 시도하였다.


2. 대한민국에서의 ‘자유주의’


영화 “1987” 속에 박 처장(김윤석 분)은 공산 이데올로기에 엄청난 반감을 가진 것으로 설정되어있다. 영화 속에서 박 처장 스스로 자신이 왜 이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가를 설명한다. 그는 일제강점기 북한에서 지주계급의 아들이었는데, 해방이 되자 공산주의자들이(김일성) 북한을 점령하여 지주 계급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가족 모두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지주 계급에 대한 농민들의 복수는 일제 41년 동안 수탈당하고 핍박받은 민중들의 분노였고 그것은 일제강점기 친일 지주들의 농민과 민중에 대한 만행의 결과였던 것이다. 결국 돌고 도는 업보인 셈인데 이 업보는 다시 남북 분단 이후 남, 북한에서 이념 대립의 형태로 변모한다.(이 지점에서 자유는 반공과 일대일 치환된다.)


북한에서도 김일성 일파가 그들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이념의 문제는, 남한에서 좀 더 다양한 갈래로 발전하여 부당한 권력의 유지에 봉사하게 된다. 영화의 박 처장과 같은 북한 지주 계급의 잔당들(대 부분 친일의 전력이 있는)이 남하하여 이승만 정권의 유지를 위해 헌신한다. 이승만 정권은 이들의 복수심과 공명심을 이용하여 정권연장과 체제 안정의 수단으로 이념을 이용했고, 뒤 이어 등장한 박정희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들은 이 방법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그 극단적 사태가 바로 영화처럼 고문으로 사람을 죽이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이 부분에서 우리는 ‘자유’라는 단어가 가지는 이중성을 절감한다.)


친일 부역자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그들의 죄과를 감추고 살아남기 위해 친미로 얼굴을 바꾸었고 또 극단적인 우익으로 변종에 변종을 거듭했다. 극단적인 우익은 다시 반 자주, 반 통일 세력을 양산하고 마침내 자본이라는 괴물과 야합하여 지금의 기이한 일들을 만들어 낸 것이다.


틈만 나면 국부라고 받드는 이승만과 거의 신격화로 치닫는 박정희는 바로 이런 기형과 괴물들이 뒤섞여 만든 허상이다. 단적인 예로 해방 당시 북한에 거주하던 지주 계층들이 남하하여 만든 서북청년단은 이승만의 개가 되어 온갖 잔학한 일들을 자행하였고(다가올 제주 4.3, 그리고 김구 암살 등등) 마침내 그들은 지난 2014년 서울에서 재 창립에 이르렀다.


지난 정부 시절 ‘불가역적 보증’까지 해 주며 굴욕적으로 이루어진 한 일 위안부 협상은 큰 틀에서 보면 미국의 작품이라는 것이 대, 내외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통상 협정을 맺은 1882년 이후로 변하지 않는 입장이 우리나라를 일본의 보호 아래 두는 정책이었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끝난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이 정책은 직접적으로 우리나라를 자신들의 영향권 내에 두는 것으로 바뀌었지만 전 후 일본이 비약적으로 성장하자 다시 이전의 정책으로 회귀하였고 이 정책은 현재에도 거의 유효한 정책으로 생각된다.


미국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화해를 위해 노력한다는 기본 입장을 밝혔지만, 근본적으로는 일본의 입장에 언제나 동의해왔고 한 일 위안부 협정에서도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직후 급 물살을 타더니 마침내 졸속으로 그것도 치욕적으로 협정을 맺고 말았다. 즉,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통론이다. 일 년에 9조 원어치의 무기를 사면서 뭐가 아쉬워서 미국의 말 한마디에 이런 치욕적인 일을 했을까?


그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의 흠결(欠缺)에 있다. 미국은 하자(瑕疵) 있는 지도자와 정통성에 흠결(欠缺) 있는 정부를 선택하였고 그것을 미끼로 끊임없이 우리나라를 조종(操縱) 해 왔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부가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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