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그리고 번뇌

by 김준식

혁명, 그리고 번뇌



네팔을 트레킹 하다 보면 흰색, 초록색,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천으로 만든 룽다 (Lungdar)를 보게 된다. 룽다는 ‘베다’나 ‘우파니샤드’에도 등장할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룽다의 전통이 네팔 불교에 포섭되어 좀 더 세분화되었는데, 이를테면 희망, 소원, 안전 등을 기원하며 거는 깃발이 된 것이다. 얼핏 만국기처럼 보이는 이 오색찬란한 깃발은 각 색깔마다 상징이 다르다. 흰색은 티베트의 식수가 되는 흰 눈을, 초록색은 티베트의 푸른 물을, 파란색은 시린 하늘을, 노란색은 풍요로운 대지와 곡식을, 빨간색은 열렬한 불심을 뜻한다.(네팔의 대부분은 검은색 땅과 흰색 눈인데 멀리서도 룽다는 그 특이한 색채와 펄럭임 때문에 잘 보인다.)



높은 곳에서는 눈이 내린다 하더니 새벽 공기가 차가웠다. 매년 겪는 꽃샘추위지만 매년 느낌이 다르다. 거의 비슷하게 반복되는, 어쩌면 동일한 사실에 대한 인간의 감정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은 아마도 우리의 사고 작용 탓 일지도 모른다. 비교 군에 대한 끝없는 대조와 분석이 내 머릿속에서 교차하고 있지만 정작 스스로는 느끼지 못한다.



비교의 대상은 先驗(선험)이다. 칸트의 선험처럼 정교하지는 않아도 인식을 가진 우리 모두는 나름의 선험 체계가 존재한다. 선험에 기준하여 새로운 현상을 비교하고 대조하여 판단하는 사고 작용은 인간의 문화적 특징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음악이나 미술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선험 체계는 개인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특정한 대상에서 共鳴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공명에 기준하여 무리를 짓기도 한다.



따라서 보통의 우리 생각들은 거의 독립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 대체로 각자의 선험 체계에 따라 그리고 사회적 공명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령 어떤 생각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를 되돌아볼 때 그 일어나는 곳을 깨닫기는 매우 어렵다. 만약 이러한 경지에 이르렀다면 우리는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상황을 靜觀(정관)이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그 경지는 지극히 고요하고 그로부터 모든 사실의 연결고리가 확연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룽다가 펄럭이는 설원에서 느끼는 감정은 크게 복잡하지 않다. 목적지, 방향, 추위, 안락 정도의 생각이 지배한다. 하지만 일상의 삶 속에서 주말의 고요는 삼천 대천 세계를 덮을 만큼 번뇌가 많다.



80년대 초반 학생운동은 이른바 CNP 논쟁으로 뜨거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거의 허상에 가까운 혁명이론이지만 당시에는 충실했고 충만했으며 실천의 지도 강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CNP란 CDR(Civil Democratic Revolution: 시민민주혁명론), NDR(National Democratic Revolution: 민족민주혁명론), PDR(People`s Democratic Revolution: 민중민주혁명론)을 말한다.



각 진영의 논리를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CDR론은 당시 종속이론을 근거로 한국사회를 주변부 자본주의로 보았다. 한국 자본주의는 종속성과 파행성으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모순을 느끼는 계층은 노동자 등 기층 민중 만이 아니라, 영세자영업자, 민족자본가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세와 군사독재권력과 다양한 계층 간의 대결이 현 단계 운동의 성격이다. 민주적 민간정부를 수립하고, 그 과정에서 기층 민중운동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이 논리에 의한다면 혁명은 이미 성공했고 그 결과는 알고 있는 바와 같다.)


PDR론은 한국의 사회구성체를 국가 독점자본주의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초기의 파행에도 불구하고 70년대 산업자본의 확립을 거치면서 자본주의적 발전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한국 혁명운동의 주력은 노동자, 농민 등 기본 대중과 혁명적 지식인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사회의 주요 모순은 독점자본을 물적 토대로 하는 제국주의 및 군부파쇼 세력과 보수야당을 한편으로 하고, 기층민중과 혁명적 지식인을 한편으로 하는 양자 간에 형성된 모순으로 보고 있다. 이 입장에서는 당면과제를 독점자본 및 그 유지 세력인 군사독재권력의 타도에 두고 그 후 기층 민중이 주체가 되는 민중권력을 수립해야 한다고 보았다.(이 이론 역시…. 군사독재는 타도되었으나 기층민중은 정권의 주체세력은 고사하고 기존의 독재세력의 잔당이나 교묘하게 변화한 세력들을 지지하는 모순에 빠져버렸다.)



NDR론은 한국사회구성체를 신식민주의적 독점자본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입장에서는 한국의 자본주의는 스스로 발전을 하기도 전에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깊숙이 편입됨으로써 신식민주의적 종속성이 심화되었으며, 그 상태에서 상업자본이 산업자본으로 발전하였고 국가권력의 비호 아래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이루어져 독점자본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애매하다.)



靜觀이라는 측면에서 위 혁명이론의 뿌리를 본다. 아니 뿌리가 드러났으니 이제는 뿌리가 아니다. 당시의 혁명세력들이 미래를 예측할 수 없었으니 오류는 인정하자. 문제는 우리가 타도해야 할 대상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당시의 敵들은 이제 혁명세력과 구별되지도 않고 심지어 혁명세력들보다 더 혁명적으로 꾸미기도 한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 농민은 길을 잃고 있다. 기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세력들 모두가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의 길로 나섰다.



SNS를 보면서 탄식과 절망을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허상이다. 하지만 SNS에서 자주 변신과 좌절과 절망과 탄식을 본다. 물론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미 흐려진 것일까? 길을 찾아야 하는데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 티베트의 룽다는 희망, 소원, 안전의 소원 외에도 목적지를 보여주는 좋은 방식이다. 룽다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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