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

by 김준식

1. 광기의 역사


푸코의 『광기의 역사(Folie et Déraison: 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 1961)』를 읽으면서 슬쩍 동의하는 부분들이 제법 있다. 그중 하나는 광인에 대한 시대적 편견(시선이라는 말이 더 옳을 수도 있겠다.)에 대한 푸코의 생각이다.


중세의 광인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간주되긴 했으나 특별히 배제되거나 탄압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계기로 인간 이성이 깨어나면서 광기를 규정하는 지식이 달라지자 광인에게 작용하는 권력의 성질도 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19세기에 정신분석학의 지식이 발달하고 정신병원이 생겨나면서 그 권력은 다시 변했다. 결국 광인을 취급하는 방식(권력의 작용)은 방치에서 감금으로, 감금에서 치료로 시대에 따라 다르게 행사되어 왔다는 얘기다.


21세기 狂人은…… 참!


2. 친구 끊기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관계는 아니었다. 그런데 문득 돌이켜보면 나의 외부를 지그시 누르는 힘을 느낀다. 그 힘의 원천은 아마도 나에게 있어, ‘자존심’으로 표현되는 애매한 나의 Doxa일 텐데.


그래서 몇 사람의 페이스 북 친구 관계를 끊었다.


라이프니츠는 뉴턴의 고전 역학에 대하여 몇 개의 의문을 제기하며 스스로 몇 개의 반증을 제시하고 뉴턴과 다른 입장을 제시했다. 후대의 학자들은 라이프니츠의 이런 입장을 뉴턴의 절대주의 역학에 비교하여 관계주의 역학이라고 불렀다. 둘 사이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4살 차이인 둘은 평생 라이벌이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자신의 연구에 매진하였을 것이다.


나는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관계에서 둘 중 누군가에게 있었을 ‘열등감’만 쏙 빼서 나에게로 치환하고 그 유치한 생각에 기대어 친구관계를 단절하고 조금 편안해졌으니 참 못났다.


3. 새벽달


음력 2월 22일 달이 새벽하늘에 문득 걸렸다. 초승달도 아니고 그믐달도 아니며 보름달은 더더욱 아닌 반달, 그것도 몰락해가는 반달을 보며 문득 나의 상황이 반달처럼 불안정 혹은 어정쩡한 상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쇼펜하우어는 그의 책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9)』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기 시야의 한계를 세계의 한계로 믿는다.” 딱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흠칫 놀란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엄청난 지적 탐험 끝에 발견한 경지이지만 나는 그저 그 말의 표상(Vorstellung)에 사로잡혀 새벽녘 반달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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