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울
하루 종일 우울하다. 60대의 우울 인지도 모를 이 찜찜한 우울이 하루 종일 마음을 지그시 누르고 있지만 딱히 호흡을 방해하거나 일상을 침범할 정도의 우울은 아니다. 우울함이란 나의 육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의식의 작용이라고 본다면 결국 이 우울은 나 스스로 만들어 낸 假像狀況이 분명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스스로 만들어 낸 감정의 무게에 눌려버리는 이 어리석음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순간 나의 우울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리고 만다. 하지만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이 우울의 바닥에는 나의 이기심과 나의 분별 심, 그리고 연질의 각종 감각들이 뒤섞여 실체도 아닌 그렇다고 허상도 아닌 그 어떤 것을 만들어 놓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분노의 소재가 되지 못함에도 문득 분노하고, 그 분노가 못마땅해서 마음 상하는 일이 요즈음 자주 생긴다. 여전히 마음공부가 부실한 탓이다. 한 때 강건했던 마음이 있었을까? 그 조차도 의심이 간다.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느슨해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런 마음으로 나이가 든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생각에 이르니 현실이 사소해진다. 태산같이 크고 단단한 마음은 다만 꿈이었던가?
또 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회한에 젖게 마련이다. 悔恨이란 지난 일에 대한 반성과 스스로에 대한 탄식인데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난 일에 대한 회한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물론 회한이 너무 많은 것은 문제가 될 수 있겠으나 회한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또 다른 준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가오는 그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인데 나이가 든 사람들의 미래는 사실 지나온 날들의 반복이면서 동시에 큰 변화 없는 무미건조한 일상의 지속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생각의 끝에 달려있는 것이 바로 ‘우울’이다. 우울은 희망 없는 미래와 푸석한 현실의 반사경이다.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어지는 나이가 되면서, 미래는 화려한 희망과 빛나는 목적지가 아니라 지나온 날들보다 약해지고 초라해지는 일만 남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는데 그 생각을 자양분으로 하여 곰팡이처럼 퀴퀴한 냄새를 피우며 눈 깜짝할 사이에 번지는 것이 우울이다. 이 상황을 막아낼 특별한 방법이나 대책은 별로 없지만 사람들은 딱히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아내려고 하지도 않는데 그 이유는 너무 빠르게, 어떤 예고도 없이 어느새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 지나온 날들이 화려하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당연히 화려하지 않을 것임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데, 우리는 별 가능성이 없는 희망을 그래도 미래에 부여하고 살아가게 된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라는 절대적 명제를 철석같이 믿으며 오늘과 비슷하거나 혹은 조금 못한 내일을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희미하고 작은 희망이 마음에 있으므로 또 다른 에너지를 스스로의 몸속에서 마음속에서 이끌어 내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울은 비 정상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의 모습이다. 늘 우리와 함께 한 마음의 모습이지만 평소에는 다른 모습이거나 또는 평소에는 너무 작아서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마음의 모습은 순간에 우주가 되었다가 또 순간에 바늘 끝도 되지 않는가? 그러니 보이지 않았던 우울이 어느 순간 마음의 전부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즈음 몹시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 우울할 이유도, 우울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2. 아름다움
우리가 알고 있고, 또 실제로 생활 중에 늘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 중, 사실 그 단어의 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경우가 자주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평가도 이와 같아서 단 한 번도 그 사람을 만나보지 않았으면서도 그 사람을 폄훼하는 경우(사실 특정인을 없는 자리에서 평가절상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간 본성상 그러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와 그 사람의 저작이나 사상을 단 한 번도 접해 본 적도 없으면서 (타인의 의견을 기준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 절하하는 경우가 많다.
유독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일이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름다워지기는 어렵다. 망가지는 외모만큼이나 내부적인 것도 혼탁해지기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로부터 감동을 받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수 백 년 된 노 거수도 봄이 되면 새싹과 꽃을 피워낸다. 아름답고 위대해 보인다. 하지만 사람은 나이 들면 들수록 타인에게 아름다움을 주기가 어려워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답게 나이 든 사람은 드물다. 자연을 닮아가는 것이 이래서 어려운 것이다.
외부의 아름다움은 내부로부터 유래된다는 것은 아주 오래된 명제이다. 미학의 본질도 이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참으로 다양한 의견들도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인간의 시선에 상응하는 대상(그것이 유형이든 또는 무형이든 간에)에 종속한다.
고흐 작 Sorrowing Old Man ('At Eternity's G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