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미장센으로서 우주
우주! 그 무한의 세계에 대한 지극히 유한한 인간의 해석이 오직 ‘흥미’라는 것 외의 어떤 가치를 가질까만, 그래도 그러한 해석을 통해 무한의 세계를 상상해보는 것은 현재의 단편적이며 얕은 인간의 삶에 약간의 깊이와 사유의 공간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주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의 대부분은 다만 영화적 미장센으로서 우주를 이용할 뿐, 대부분 그 무한함과 영원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영화 역시 우주적 이미지를 차용한 남녀의 사랑이야기일 뿐이다.
무한의 세계라는 것은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인간의 가치체계가 가지는 유한성으로 인하여 오히려 우주는 무한의 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거리, 속도, 크기의 개념으로 우주를 평가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가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빛의 속도(광속)로 달려도 몇 천, 몇 만 심지어 수 십 만년을 가야 하는 거리를 인간의 거리 개념으로 환산하여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패신저스(Passengers)의 영화적 시공간은 확실히 지금으로부터 제법 멀어 보이는 미래다. 공간은 우주선으로 제한되어 있다. 우주여행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래서 등장한 방법이 휴면(동면, 혹은 수면 비슷한 상태로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 기계는 중요한 시퀀스가 된다. 그리고 약간은 사소해 보이는 몇 개의 장치들이 있지만 그 장치들은 영화의 무대가 되는 우주적 공간에 완전히 종속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장치들을 다만 우주적 공간 속에 배치하였을 뿐이다.
영화에서 남녀의 사랑이야기는 ‘사랑’이라는 대전제에 도달하기 위해 시도하는 다양한 접근 방식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가에 영화적 성패가 결정된다. 결국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관객은 알고 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가에 관객들의 관심이 있다. 이 영화, ‘패신저스’의 사랑에 이르는 과정은 관객들 모두가 이미 두 남녀가 사랑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영화를 보고 있기 때문에(왜냐하면 우주선이라는 공간에서 만난 젊은 남녀라는 영화적 설정이 있다.) 아마도 시나리오를 만든 작가나 감독은 각종 장치들을 매우 신중하게 사용하였을 것이다.
몇 개의 장치들이 있다. 특히 폐쇄공간은 이런 부류의 영화가 매우 잘 사용하는 장치다. 거의 필연적으로 사랑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추측이 관객에게 제공된다. 그리고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반드시 등장하는 메신저도 있다. 사랑이라는 극적인 감정을 제어하기 위한 거짓말, 화해, 죽음, 사고, 위험 등이 모두 등장하는데 이러한 일상의 장치들이 더욱 부각되는 것은 우주라는 고립공간, 그리고 우주선이라는 폐쇄성 때문이다.
특별히 인상적인 장치는 남자 주인공을 구출하는 여자 주인공이 우주공간에서 잡는 남자 주인공의 케이블(생명선)이다. 동양에서 사랑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흔히 등장하는 “인연의 끈”이 영화에서는 서양의 방식대로 구체화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역시 이런 느낌은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좀 더 관념적인 방식으로 이해되는 것 중 하나는 여자 주인공(오로라 레인 역, 제니퍼 로렌스 분)을 선택하는 남자 주인공(짐 프레스턴 역, 크리스 프랫 분)의 오랜 갈등이다. 이 갈등은 단순히 배우자의 선택이라는 평범한 문제로부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매우 종교적 이미지까지 포함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선택을 실행하는 남자 주인공의 행동과 아무것도 모른 체 깨어나는 여자 주인공의 장면은, 우리 모두의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삶과 죽음이, 단지 나의 완전한 선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조차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