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인 아버지의 입장
내 젊은 시절, 특히 20대 초반의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목적에 충실한 삶이었다는 것이다. 성취, 그리고 새로운 목표 외에는 별 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학교 4년 내내 스스로 정해 놓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내 삶을 소비했고, 그러한 목적적인 삶의 소비는 너무나 당연하게 내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들었다.
하여 누구와 가슴 절절한 사랑은커녕 외사랑 조차도 변변하게 해 보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는데 심지어 이런 사실에 은근하게 자부심마저 느끼는 삶을 살았고, 또 여전히 지금도 그렇게 “자뻑”으로 일관된 삶을 유지하고 있다.
나에게는 올해 21세 되는 아들이 있다. 비록 막내이기는 하지만 조금 늦은 나이에 본 아들이다. 그 녀석의 삶을 보며 나는 나의 삶을 가끔씩 반추해본다. 물론 기성세대인 나와 그 녀석의 삶이 비슷할 개연성은 거의 없지만 내 아들이기에 어떤 논리적 근거도 없이 서로의 삶을 비교해 보곤 한다.
그 녀석은 최근 매우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지금의 삶을 유지하여도 별 문제 될 것이 없는 상황임에도 그 녀석은 스스로 가진 대부분을 깨끗하게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부모로서 적극적인 반대는 아니지만 넌지시 만류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 녀석의 각오는 이미 확연했기에 우리 부부는 녀석의 입장을 지지하기로 했다.
녀석이 내려놓은 상황 중에서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녀석의 사랑 문제이다. 부모로서 녀석을 볼 때는 아직 어리지만 21살은 어린 나이는 분명 아니다. 하여 지금의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녀석의 입을 통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단절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애틋한 마음의 한 자락이 어찌나 안타깝게 느껴지던지...... 또 한편으로 그 여자 친구의 입장과 이런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도 안타까웠다. 녀석 말로는 여자 친구가 단절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어쨌거나 거의 1년을 사귄 사이인데.
내가 20대였을 때 그러한 경험이 전혀 없었으므로 녀석의 지금 애틋함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녀석의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가끔씩 저도 모르게 내뱉듯이 하는 여자 친구와의 이야기 속에서 언뜻언뜻 그 애틋함을 본다. 물론 완전히 나의 판단이기는 하지만 녀석이나 그 여자 친구는 지금 힘든 과정을 겪고 있음에 분명하다.
이 시기가 끝나고 또 세월이 한 참 흐른 뒤 녀석과 그리고 그 여자친구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을 때 지금 이 시절의 기억이 분명 떠오를 것인데, 그때 녀석의 지금 결정이 녀석에게 어떻게 느껴질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지금 녀석은 성장하고 있는 과정이다. 지금의 고민과 선택이 자신의 삶에서 여러 가지를 결정짓고 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나 혜택도 온전히 본인의 것이 될 것이다.
너무나 주관적인 아비의 입장으로 그 선택은 옳았고 그 결과도 좋기를 간절히 바란다. 복잡하기는 하지만 결국 제 자신을 위한 매우 이기적인 그러나 한편으로 참으로 애틋한 20대 초반의 사랑을 스스로 끝낸 아들, 그 가슴 아픔과 애틋함을 애써 감추고 웃는 모습으로 나와 격하게 안고 돌아가는 녀석의 뒷모습을 나는 끝내 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