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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새해 아침

기억, 그리고 2016년

by 김준식


2017년 첫날


또 한 해의 처음에 섰다.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세우고 한 해를 맞이한다. 나 또한 몇 가지 다짐과 목표를 세웠으나 두서너 달 뒤면 아마도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질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다. 우리의 기억은 얼마나 자주 사라지고 또 얼마나 자주 형성되는 것인가?


기억!


새로운 장소와 자주 가보기 어려운 장소, 또는 특별한 장면이나 상황에 마주하는 현대인들의 자세는 사진을 찍는 것으로 특정 지을 수 있다. 사진이라는 이 획기적인 기술 이전에는 그림이나 기록이었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처럼 사진기가 범용화 된 세상은 아마 지구 상에서 찾아보기 드물다. 국민 대 부분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 탓에 이제 사진은, 일상의 기록을 넘어 어쩌면 기록하기 위한 일상으로 바뀔 만큼 우리 삶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그 사진의 이면에 흐르는 정서는 기억의 저장이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기억의 정지이고 기억의 미화이다. 조금 더 생각해보면 기억의 조정에까지 이르게 된다.


영어 Memory의 어원을 살펴보면 산스크리트어 smarati에 연결된다. 이 단어와 같은 어근을 가진 단어는 놀랍게도 ‘사랑’이다. 그리스어에서는 기억이란 ‘생각’이라는 뜻과 함께 ‘유해하다’는 뜻과 심지어 ‘파멸’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기억이란 이런 의미를 두루 포함하는 말이라는 것에 왠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한자의 記는 ‘쓰다’로 풀이되지만 破字해 보면 자신을 뜻하는 ‘己’와 말을 뜻하는 ‘言’이 합쳐진 글자이다. ‘스스로 되뇌어야 할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또, 憶은 생각으로 풀이되지만 마음 心과 뜻 意로 破字 되는데 이는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여러 생각들 중에서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나타내는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기억이란 동 서양 모두 매우 중요한 생각으로서 ‘좋음’과 ‘나쁨’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나에게 2016년의 기억은 어떤 것인가? 불쾌하고 암울한 나머지 분노의 기억이 지배적이다. 물론 가장 최근의 정치현실과 사회분위기 탓이기도 하겠지만 2016년 내 일기 전체를 살펴보아도 그러한 생각이 지배적이다. 정치현실로부터 개인이 너무 많은 영향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무대가 곧 정치무대이고 숨 쉬는 공기가 곧 정치현실이고 보면 그것으로부터 遊離된 삶은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새해 벽두부터 많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 이 땅은, 아직도 권력을 틀어쥐고 모든 것을 조정하려 하는 이 나라 대통령을 비롯한 그 부역자들과 지난밤 10차 촛불대회로 누적 1000만의 이 나라 국민이 여전히 대치하고 있는 국면이다. 아직 세월호는 바다에 빠져 있는데 왜 거기에 빠졌는지에 대한 토론이나 의문들이 이제는 피곤한 것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되었고, 아무런 기득권도 가지지 못하면서도 조금 먹고사는 자들은 자신이 기득권자인 줄 착각하고 지금의 정치현실에 대해 나름의 분석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 분석이나 의견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참으로 형편없는 깊이와 판단력만을 확인시켜 줄 뿐이다. 감히 단언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99%의 사람들, 그리고 나를 아는 99%의 사람들은 기득권자가 아니다. 단 한 번도 기득권을 가져 본 적이 없는 민중이다.


여전히 밝은 눈과 여전히 넘치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우리 민중들은 그래도 이 땅의 희망이며 동시에 새 역사의 받침이 될 존재다. 2017년 말 기억을 더듬어 아픈 기억을 덜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정치적 현실에 대하여 냉철하고 날카로워야 한다. 그러나 서로에게는 한 없이 따뜻하고 부드럽기도 해야 한다. 이중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이 이중성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이중성이 아니라 서로를 보듬어주기 위한 이타적인 이중성이다.


새해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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