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그리고 관점

이상한 답변

by 김준식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언제나 있어온 논쟁 중의 하나가 바로 ‘진실’에 대한 논쟁이다. ‘진실’ 이란 거짓이 없는 사실이라고 풀이되지만 사실 거짓이라는 말 자체가 어떤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하기 때문에 엄격히 말하면 ‘진실’에 대한 이 해석조차도 내부적 모순에 빠지고 만다. 즉, 무엇을 기준으로 하여 그것이 거짓이고 진실인가가 늘 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그 기준이 바로 ‘관점(觀点)’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건이나 물리적 화학적 작용으로 확연하게 달라져서 눈으로 파악 가능한 변화에 대해서는 100%는 아니지만 진위 문제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설사 생긴다 하더라도 실험이나 반증을 통해 얼마든지 규명해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문제는 실험과 반증이 매우 까다롭거나 때로는 불가능한 것들, 이를테면 역사라든지 철학 등은 인간의 사고 작용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시간의 개념까지 관통하고 있으므로 매우 다양한 ‘관점’이 작용하고 그 ‘관점’에 따라 ‘진실’의 모습은 너무나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역사적 ‘진실’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타당성이 없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역사라는 것이 엄청난 ‘관점’을 수반하게 되고 이 ‘관점’마다 각각의 ‘진실’이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실체적’이라는 단어를 덧붙여 ‘실체적 진실’이라는 표현을 써서 좀 더 정확하고 합리적으로 역사를 보는 ‘관점’에 사용하려 했지만 이 또한 매우 불분명한 단어의 중첩일 뿐이다. 그러면 과연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가?


오늘 헌재에 제출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답변서는 ‘관점’도 없고 ‘논리’도 없는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그리고 그 잘난 변호인단이 있다면 진실은 고사하고 최소한 ‘관점’을 가진 앞 뒤가 맞는 이야기라도 해야 될 것 아닌가? 도대체 밥 먹고 하는 일이 뭔지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본인의 입장만 내뱉는 꼴을 보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 같기도 하다.


대통령 변호인단 중에 서모라는 변호사는 한 때 부림사건 판사로 제법 진보적이었으나 10여 년 전부터 급작스레 보수(엄밀히 말해서 보수가 아니라 “공산당이 싫어요” 류의 극우 편향)로 진로를 갈아 탄 사람이다. 그가 얼마 전 모 언론과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기가 막힌다. 이런 사람들이 변호사라니. 합리와 진실은 고사하고 자기중심적 편집증에 사로 잡힌 사람 같았다. 1000만 촛불을 공산 분자의 음모라고 과감하게 이야기하는 기괴하고 가련한 정신의 늙은 법조인을 대통령은 자신의 변호인단에 합류시켰으니 유유상종인가!


분명 실체적 진실은 있다. 다만 잘못된 관점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두려운 결과 때문에 그것을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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