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

지금, 우리는...

by 김준식

1. 구속


김기춘, 조윤선, 언론에서는 이들을 “법꾸라지”라고 부른다. 또 한 명의 법꾸라지 우병우를 포함해서 모두 사법시험 합격자들이다. 개인적으로 한 때 사법시험을 공부한 적이 있어서 그 시험의 과정을 비교적 잘 알고 있다. 1차 과목 중에는 없지만 2차 과목 중에 윤리라는 과목의 시험이 있었고(이 과목은 90년대 초반 사라졌다.) 그 과목은 장차 이 나라의 법관이 될 사람들의 정신자세를 점검해 보는 과목이었다. 이들은 모두 이 시험에 합격하였으므로 이 윤리 과목의 점수를 합격점 이상을 받았을 것이다. 윤리 과목의 시험 내용은 국가 윤리가 중점이었다.


국가 윤리의 근본은 다양한 형태로 구현되지만 그중 헌법은 바로 이 국가 윤리에 터 잡아 응축시킨 명문 규정이다. 국가 윤리의 결정체로서 헌법은 그 나라의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공부하고, 또 마지막까지 유지해야 할 강력한 기준이다. 헌법에서 憲을 破字해보면 害(해)와 目(목) 心(심)이 합쳐진 글자다. 이는 해로운 것을 마음의 눈으로 살펴보는 것, 즉 해롭지 않은 길로 가도록 하는 규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의 精髓는 헌법 전문에 잘 정리되어 있다. 김기춘, 조윤선이 구속된 것은 그들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소위” 블랙리스트” 때문인데 이것은 헌법 전문 중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에근거하여 규정된 제22조 ①항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를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다.


헌법적 가치를 정면으로 위반한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겠다는 맹서를 한 뒤 사법시험을 통과하여 일반인에게 국가의 권력을 위임받아, 법 적용을 했던 법조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국가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였다. 김기춘은 박정희 시절부터 지금까지 법을 무기로 독재자의 부역자가 되었으며, 조윤선 또한 그 독재자의 딸을 위해 자신의 지식을 사용하여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부역자가 되었다. 양심 없는 자에게 부역의 길은 장미 꽃잎이 뿌려진 탄탄대로가 아닐 수 없다. 권력과 자본이 끝없이 따라오고 개인의 욕망을 아낌없이 해소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여 김기춘은 전 삶을 부역자로 살아왔고 그 끝에 잠시 교도소에 있을 뿐이다. 조윤선 역시 화려한 부역의 이력을 자랑한다. 그리고 지금 초췌한 중년 아줌마의 모습으로 수감되어 있지만 사실 이들의 형사적 책임은 의외로 가볍다. 길어야 1~2년 형을 받을 것이고 어쩌면 그것도 감형되거나 또는 집행유예 될지도 모른다.


매우 위험하고 독자적인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법을 만든 사람은 법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많거나 혹은 그 법 위에 존재할 가능성이 많다. 역사적으로 인정되는 시원적 권력은 종교적 권력이다. 신이 법을 만들어 인간에게 법을 지키도록 했다는 이야기는 수많은 신화와 역사가 이 사실을 증명한다. 그런데 여기서 법을 만든 신이 그 법을 지키는가? 모세의 율법은 모세가 신의 이름을 빌려 인간을 통제하고 규정하기 위한 것이었고, 함무라비 법도 함무라비가 신에게 신탁받은 것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법을 만든 존재들은 이미 그 법 위에 있는 존재들이고, 그들이 그 법을 지키는가 혹은 위반하는가는 처음부터 논외의 문제였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이 문제가 너무나 자명해진다.


400억의 뇌물 공여의 혐의가 있는 이재용의 구속은 기각되었다. 뇌물 죄를 제정한 최초의 이유는 공공의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 부당한 청탁의 대가로 금원(돈, 기타 자본재)을 공여하는 행위자(공여자 및 공여 제공자)를 벌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재용의 기각은 이재용을 뇌물 공여자로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기이한 사실을 조금 더 헤집어보면 이것은 법 해석의 문제 이전에 최초 뇌물죄라는 죄의 제정 주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역사 이래로 이러한 뇌물죄 범죄는 줄곧 있어왔다. 그런데 왕조국가에서 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것은 전혀 뇌물이 아니다. 왕이 공무를 담당하는 최고의 권력자임이 분명한데도 그것은 공물이고, 동시에 준 조세로서 ‘진상품’이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물론 뇌물과 공물에 대한 개념의 차이는 물론 있다. 그러나 뇌물죄의 주요 대상은 왕 이하의 관료들이었고(좀 더 엄격하게는 정치권력을 쥐지 못한 관료들) 그들에게 청렴할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근대 공화제에서 형식적으로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이야기 하지만 법 앞에 평등은 요원한 구호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지금도 법 앞에 평등을 거의 모든 나라의 헌법에 명시하여야 할 만큼 역설적을 법 앞의 평등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참조 우리 헌법 제11조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뇌물임이 너무나 자명한 금원 400억을 제공한 이재용의 불구속은 헌법제 11조를 침해한 것이며 법이 평등하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한 대표적 사례가 된다. 동시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법(뇌물죄)은 제정한 권력자들에게는 무용하거나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것이 반증되는 대목이다. 논리적 비약이 있지만 딱히 반박할 근거도 없어 보인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이재용은 왕조시대 왕과 버금가는 권력자이거나 아니면 왕이 비호하는 세력으로서 입지를 가진다는 것이다. 기각 판결을 내린 조의연 판사의 삼성에 대한 생각이 아마도 이와 비슷하거나 또는 이 수준에 머물고 있음이 분명하다. 비록 그는 행정, 사법 양 시험을 합격한 시험의 귀재이기는 하지만 시대인식과 민주적 사고, 양심, 시민의 책무라는 면에서는 아마도 초등학교 수준이거나 어쩌면 그 이하의 수준이 분명하다.


2. 반기문


10년 동안 UN사무총장이었던 그가 한국에 돌아와서 벌인 일련의 일들은 그가 정치인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는 정치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는 관료일 뿐, 정치인은 아니었고 또 아니다. 이 나라 수구세력들은 그런 반기문을 대통령의 자리에 앉히려 하고 있다.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덜 떨어진 인물을 대통령으로 앉혀놓고 그 뒤에서 지금까지 누려왔던 수구세력의 이권을 유지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녹녹해 보이지는 않는다. 먼저 반기문의 모든 것이 대통령, 아니 정치인으로서도 함량 미달이다. 어디 한 구석도 명민하거나 뚜렷해 보이는 것이 없다. 일국의 대통령이 가져야 할 정치적 감각이나 비전을 그로부터 읽을 수 없고 그저 좌우를 방황하는 그리하여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이름 그대로 반반의 불투명함만 부각되고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과는 사실 거리가 좀 있었다. 조작된 사실을 퍼트리는 언론에 의해 언제나 이 땅의 민주주의는 상처받았다. 그 가장 큰 상처가 지금 이 정부다. 이 엄동설한에 광화문 광장에서 정권타도와 대통령 하야의 촛불을 들어야 하는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민주적 제도가 작동된 나라라고 볼 수 있는가? 하물며 그 반대쪽에서 미국의 성조기를 들고 계엄령과 쿠데타를 외치고 상대편을 향해 죽여라! 의구 호를 외치는 존재들이 망령처럼 떠도는 이 상황을 과연 민주적 가치인 다양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얼마 있지 않아 대통령 선거가 있을 것이다. 그 선거는 이제 이 땅의 민주주의와 정의의 기준에 대한 우리의 좌표이어야 한다. 향후 100년을 위한 이 땅의 기준점이 되어야 한다.


사드 배치를 찬성하고 위안부 문제에 애매한 반기문은 민족적 정체성이 없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기 위해 보인 그의 행보는 오히려 그의 정체성을 흐리게 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회색 주의자다. 감정조절도 잘 되지 않는 70대 후반의 초라한 노인일 뿐이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나오며 정치교체를 이야기한다. 정치 자체를 모르면서 무엇을 교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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