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마치고

by 김준식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수업이나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를 끝내고 나면 항상 후회가 밀려온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못함에 대한 후회도 있지만, 좀 더 천천히 되짚어보면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실제 이루어진 강의 수준의 불일치에서 오는 일종의 자괴감이 바닥에 깔려 있음을 발견한다.


어제는 학습연구년 선생님들에게 ‘교사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약 4시간 동안 강의를 했다. 별 볼일 없는 내가 감히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루 종일 ‘인문학’을 운운하는 것이 가당치 않지만 여차 저차 한 사정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모든 일은 마음먹은 것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어제 강의도 애당초 목적은 교사인 우리가 왜 인문학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수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를 설명하고, 그에 따르는 인문학 지식의 안내가 목적이었는데 30년 교사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목에 힘을 주어 방향을 제시하고 심지어 강요의 뉘앙스까지 풍기는 난센스를 범하고 말았다.


수강하시는 선생님들께서 이 사실을 알든, 또 알지 못하시든 간에 나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방향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라야 한다. 더군다나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특정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국가가, 지방교육청이 그리고 학교가 제시하는(일반적으로 학교 교장실에 가면 잘 보인다.) ‘시책’ ‘정책’ ‘목표’ ‘교훈’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총론에 해당한다. 인문학이라는 각론에서 구체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지적 오만일 수 있다.


철저하게 반성해야 할 것은 나의 한 줌도 되지 못하는 傲慢함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이해할 수 없었던 몇 가지 일들이 확연해진다. 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이 고민되고 약간 힘들었는데 그것의 원인은 역시 나에게 있었다.


흐린 날씨만큼이나 불투명한 세상이다. 나 역시 흐리다. 원인은 파악하였으나 평화로워지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