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과 공허함

by 김준식

1. 悶


마음(心)이 문(門) 사이에 있다.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상황일까? 아니면 들어가기 싫거나 나오기 싫은 상황일까? 네 가지 경우 모두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의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한 복잡한 상황을 아주 절묘하게 묘사한 글자가 悶(민)이다. 사실 門(문)이라는 글자가 가지는 함의 또한 깊고 넓으며 또한 다양하다. 門이라는 개념의 기초에는 세계와 영역, 범위와 한계 그리고 진행과 방향성이 가로 세로로 촘촘하게 짜여 있고 그 위에 결정적으로 ‘의지’가 스며들어 있다.


의지에는 거의 방향성이 개입되지만 방향성 없는 의지도 있을 수 있다. 자주 의지는 ‘욕망’과도 통하며 ‘선택’과도 교류하는데 욕망이나 선택은 대부분 일정한 방향이 없다.


마음은 어떤가? 心은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다. 마음은 영어로 Mind, Heart를 쓴다. Mind는 어원상 생각이나 정신적 작용에서 비롯된 단어다. 반면 Heart는 느낌이나 욕망, 용기 등에서 유래되었다. Mind는 정신적 작용에 중심을, Heart는 물질적 객체로서 육체적 작용에 방점을 두고 있다.


경계와 범위를 정해 놓고 그 경계와 범위를 넘어서기 위한 장치로서 門, 진행의 속도와 방향성이 가지는 가치를 규정하고, 그것의 제어와 확장을 아우를 수 있는 門에 사람의 물질적 정신적 상황이 교차되는 상황을 묘사하는 悶(민).


동서고금의 모든 현인들이 공부하여 얻고자 했던 최고의 가치는 바로 이 悶(민)으로부터의 자유였다. 명상을 통해 대 자유를 얻은 부처께서는 자신의 경험과 논리를 셀 수 없는 방편으로 설명하셨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경전인데, 우리는 2600년 동안 그 경전조차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니 悶으로부터 자유는 멀고도 험난하다. 심지어 우리는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갈수록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2. 공허함


공허함이란 무엇인가? 객관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상황을 나타내기도 하고, 또 그 상황에서 느끼는 매우 주관적 감정을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주관적 상황인식과 실제 아무것도 없는 객관적 상황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공허함이란 전자의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허의 虛는 사람이 죽어서 관속에 묻히는 것을 나타내는 형성 글자다.)


즉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상황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공허함이라 쓰면서 그 의미 중에 ‘아무것도’라는 지극히 주관적 감정을 개입시켜 좀 더 상황을 확연하게 하려 한다.


그러면 있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인간의 소유욕 혹은 욕망이 작용하는데 그 작용의 중심점 주위로 몇 가지 다양한 감각과 감정들로 위장한 우리의 소유욕이 에워싸고 있다. 그래서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소유욕은 보이지 않고 그와 유사한 감각들만을 보게 되어 공허함이란 감정의 본질이 대단히 개괄적이고 평이한 감정인 것처럼 인식시켜 자신의 욕망과 소유욕을 은폐하고 표면적으로는 상당 부분 완화시켜 보이게 만든다. 이렇듯 표면의 위장이 심화되면 그 표면을 통해 파악되는 스스로의 감정조차 오인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를 테면 내가 공허한 것은 내 욕심을 채울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다는 뜻이요, 나의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그 무엇 외에는 내게 아무런 가치가 없으므로 비록 여러 가지가 거기에 있다손 치더라도 늘 아무것도 없다고 표현한다. 사실 우리가 생존하고 있는 공간 어디에도 아무것도 없다는 상황이 가능하지 않음에도 우리는 그렇게 자주 쓰고 또 그렇게 스스로 인식한다. 이 오류를 더듬어 내 표현을 바로잡고, 그 표현의 이면에 놓인 나의 욕망을 제어할 할 수 있는 능력을 본디 우리는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다. 하여 끊임없는 반성과 노력으로 스스로 길러야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느 순간 내가 내 욕망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 살아 단 한 번만 이라도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햇빛은 차별 없이 모든 것에 비추고 그것이 모든 것의 처음이며 끝이다. 거기에는 어떤 욕망도 어떤 공허함도 없다. 다만 완벽한 채움으로부터 오는 거대한 고요함이 있을 뿐이다.


하여 푸르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