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대로!

by 김준식

應物象形*


無心看幾樹 (무심간기수) 무심히 나무를 살펴보니,

虛萼排新錄 (허악배신록) 빈 꽃받침은 신록에 밀려났네.

古友旣疎闊 (고우기소활) 옛 벗은 이미 멀어졌는데,

微風何柔溫 (미풍하유온) 가는 바람은 어찌 이리 부드러운지!


2022년 4월 20일 아침결. 학교의 오전은 고요하다. 학교를 둘러보며 내 삶도 둘러본다. 지난 며칠 동안 묵은 관계를 청산하기도 하고 또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도 했다. 온 라인 혹은 오프라인이든 늘 관계는 단절과 회복을 반복한다. 다만 나는 여기, 상대는 거기 그대로인데 연결의 강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결국 더함도 잃음도 없다.


화려했던 한 시절을 보낸 꽃받침은 쇠락하여 밀려나고, 그 자리를 신록이 푸르러지고 있다. 만물의 변화가 이와 같다. 변화하지만 변화는 없고 동시에 변화는 없지만 언제나 변하고 있다.


* 응물상형은 보이는 형태대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응물상형이 단순한 형사(形似), 즉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동양의 회화는 모사(模寫)보다는 필화(筆畵)를 통해 사물이 가진 정신적인 아름다움과 생명력의 본질을 표출하는 데 있었다. 그것은 당연하게 형상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형상 속의 정신을 보고 동시에 정신 속의 형상을 보는 것이다. 여기에 응물상형의 의미가 있다. 사혁의 화론육법 중 두 번째다.


사혁(謝赫)의 생몰연대는 알 수가 없으나 대체로 5~6세기 활동한 중국 남제(南齊) 혹은 양(梁)의 화가로서 인물화에 뛰어났다. 화론육법(畫論六法)을 제시한 《고화품록(古畫品錄)》은 후세의 화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