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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문화 선생이었던......

by 김준식


2015년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사천 관내 작은 인문계 고교에 있었다. 전교생이 60명도 되지 않는 작은 학교였지만 즐겁고 재미있게 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 해 나는 교무부장을 맡고 있었는데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사천 관내에서 우리 학교로 미술교과 겸무 오실 선생님이 없어서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결국 미술 선생님을 구하지 못했다. 학교 위치가 애매한 것이 문제였는데 진주에서도 승용차로 거의 3~40분 이상 걸리는 곳이라 강사조차도 구하지 못했다.


교장 선생님은 나를 불러 김 선생이 미학도 공부했으니 미술문화를 맡아주라고 부탁하시는 바람에(교육과정에 2학년 한 학기 주당 2시간) 하는 수 없이 덜컥 미술문화를 맡게 되었다. 본래 내 수업인 2학년 사회문화와 3학년 경제, 그리고 2학년 미술문화를 합하니 주당 20시간이었지만 특별히 무리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오늘 오후, 당시 2학년으로 나에게 사회 문화와 문제의 미술문화를 배웠던 여학생이(올해 25세)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 시험에 합격하여 창원으로 발령이 나 근무하던 중에 우연히 친구를 만나 내 이야기를 했고 현재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유선전화를 했다. 휴대전화 전번을 서로 교환하고 전화를 끊고 나니 7년 전 기억이 새록새록 돋는다. 당시의 기록을 찾아보니 컴퓨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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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하여 올해 미술문화를 가르치게 되었고 일주일에 두 시간은 미술선생으로 아이들 앞에 선다. 오늘은 자화상을 그리기로 예정된 날이었으나 문득 친구의 얼굴을 그리면 어떨까 하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흔쾌히 동의했다.


사실 친구라도 서로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 적은 없을 것이다. 친하게 지내는 두 명을 마주 앉히고 서로의 얼굴을 그려 보라고 이야기했다.


놀라울 정도로 아이들은 자세하고 천천히 친구를 살펴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서로 이야기했는데 그 이야기는 대체로 이러했다.


“너 이마 밑에 점이 있었네”


“좌 우 입술이 좀 다르네”


“머리카락을 치우니까 네 이마가 참 예쁘다”


“너 귀가 참 크구나”


“너 눈동자가 약간 갈색인데”

….


아이들은 지난 1년 동안 (한 반뿐이므로 늘 같이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치자면 약 4년 이상을 같이 보낸 아이들이다.) 같이 있어도 서로를 찬찬히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친구의 얼굴을 그리면서 서로에게 좀 더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본인의 심리적(내적) 이미지는 외부로 실현되는 그림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상대의 얼굴을 아무리 사실적으로 그린다고 해도, 그 얼굴에 자신의 심리적 상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일종의 자기 주도적 상대 얼굴인 셈이다.


심리적 상처를 가진 아이일수록 그림은 특이해진다. 평범해질 수 없는 마음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공부했던 범죄심리학의 동인이 작동하여 아이들 그림을 심리학적 필터를 통해보니 우리 학교 고등학교 2학년, 아니 어쩌면 이 나라 고등학교 2학년들의 심리와 삶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졌다.


아이들은 참으로 신나게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행복한 모습을 교사로서 나는, 자주 보지 못했다. 자는 아이도 없고 딴짓을 하는 아이도 없다. 자신의 그림에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새삼 이전까지 나의 교육이 참으로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아이들의 작품(조악하고 유치해 보이지만 사실 아이들이 가진 예술적 성향은 소질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큰 편이다. 여기 있는 그림은 그런 재능들과는 별개의 가치로 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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