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이 문득 답답해지고 무의미해지면 홀연히 나의 근원을 생각해 본다. 내 삶의 근원이래야 작은 옹달샘처럼 미미한 출발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60년간 이곳저곳의 물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여기서 ‘물’이란 존재는 나의 영혼과 육체를 망라하는 말이자 동시에 그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그 그림자들이다.
물은 흐름이다. 흐르는 것은 멈추지 않아야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다. 멈추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잘 다져진 토대와 그 토대의 유지를 위한 노력이다.(지극히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흐름은 본질적으로 한결같은 유동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물은 흐름을 바탕으로 하여 어떤 것도 形骸化시키고 마는 강력함과 동시에 그 어떤 것도 부드럽게 받아 낼 수 있는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더불어 어떤 모양과 틀에도 반드시 들어찰 수 있지만 결단코 그 어떤 형태로 귀결되지 않아야만 한다. 和而不同!
하지만 흐름이 길어지고 넓어질수록 그것에 따르는 문제가 새롭게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停滯다. 정체란 유동성의 裏面이다. 유동하여 움직이는 특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바로 정체, 즉 고임이다. 출구가 없는 웅덩이에 갇힌 물은 반드시 썩게 되어 있다. 물이 정신의 흐름을 표상하는 것이라면 그 물이 고여 썩어간다는 것은 곧 의식과 사상이 고여 썩어 감이다. 더욱이 출구가 없는 웅덩이에 고여 있다면 거의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물리적이고 실체적인 물은 그러한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정체와 부패에 이르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의 모든 것의 반영을 비유한 대상으로서의 관념적인 물이라면 이 정체와 부패가 불가피하지만은 않다. 2600년 전 인도의 부처께서는 이 상황을 경험하고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어 정등각(깨달음)을 이루셨다. 마음의 정체와 부패를 극복하고 언제나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의 본성을 회복하는 방법을 설명해 놓은 수많은 경전이 있다. 부처께서 이루신 그 깨달음은 인간 본성, 즉 앞서 이야기한 물의 본성을 회복하고 어떤 정체도 없이 그 흐름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거대한 깨우침과 빛나는 가르침이 2600년을 이어오면서 여기저기 파이고 오염되어 그 본질이 손상되어가고 있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온 지 1600년, 이미 상처는 깊고 본질은 흐트러졌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부처 당시의 청정함을 유지하자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분명하다.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이 맞다. 하지만 종교가, 더욱이 수행을 통한 인간의 절대 경지를 추구하는 불교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세속의 욕망이다.
물론 세속의 욕망도 잘만 관리하면 중생 구제의 방편이 될 수도 있다. 부처 당시에도 자주 그런 일들이 있었고 불교라는 종교가 지나온 과정이 세속적 욕망의 적절한 순화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한국 불교는 세속의 욕망이 절집을 불태우고 부처를 불태우고 있다. 검은 욕망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청정도량이라니!
해마다 부처께서 오신 날 전후로 내 걸리는 허접한 플라스틱 등 이야기는 이제 하지 않겠다. 최근에 들어 확산되고 있는 대웅전 마당에 세속의 온갖 욕망을 이루기 위해 다는 그 등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그렇게 그렇게 모은 돈으로 금불사를 하고 대웅전 단청을 올리고 전각을 짓는 것이라면 역시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돈으로 세력을 만들고 조직을 꾸리고 음모를 양산하고 마치 세간에 양아치들이 하는 일들을 일삼으면서 주말마다 산사에서 고성능 마이크를 켜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치고 冥府에 계시는 '지장보살'을 외치는 이중성이라니……
해마다 어김없이 부처께서 오신 날을 성대하게 기념한다. 인류 역사에서 오직 부처만이 인간으로서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오르셨으니 이 우주적인 사건을 이룬 당사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미 절집은 어두워졌고 사부 대중의 스승이신 수행자들도 타락했다. 야수적 자본주의의 탓도 분명 있으리라. 하지만 본질적으로 청정 수행자들이 백척간두 진일보할 수 있는 바탕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깨달음을 추구하지 않는 절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처럼 요란하게 손님을 끄는 것이다. 자신의 생일날, 그저 절집 돈벌이의 바람잡이로 전락하신 부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