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수그러들자 결혼식이 부쩍 늘어난다. 어제는 주례고 오늘은 우리 학교 교직원 자녀 결혼으로 진해에 다녀왔다. 약 1시간 거리를 오가는데 다른 사람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있으니 바깥 풍경을 오랜만에 여유 있게 볼 수 있었다. 비록 황사 자욱한 하늘이었지만 5월의 산 빛은 절경이었다. 녹색이 하나의 색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저렇게 다양한 색깔을 자연이 낼 수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결혼식을 거치고 나면 남녀는 합법적(물론 법률적으로는 사실혼이지만)으로 부부가 되어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온 다양한 금기가 해제되는데, 예를 들면 법률(민법 826조 부부간의 의무)에서는 오히려 동거의 의무를 명시하여 어제까지 금지 혹은 금기시해오던 남녀간의 실체적 결합을 강요(?)하고 있다. 얼마나 드라마틱한 변화인가? 결혼 전의 동거에 대하여 도덕의 기준을 들이대며 금지를 주장하던 사회적인 태도가 간단한 의식을 거친 뒤에는 갑자기 의무를 강요하는 태도로 바뀌다니!! 결혼식이래야 길어도 1시간, 그 사이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별 다른 저항 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위대한 철학자 Bergson이 마지막으로 집필한 책,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la Religion(도덕과 종교에 대한 두 개의 원천)에 의하면 결혼은 정적 도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정적(靜的) 도덕은 책무(責務)의 도덕이다. 이 도덕은 ‘닫힌 사회’에서 일어나며, 과거의 기성 가치들을 보존하는 것이다. 그것은 금기(禁忌)나 관습의 준수, 고정된 기준의 준수 등을 내포하고 있다.
정적 도덕이 없다면 사회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여러 가지 충동이 뒤죽박죽 얽힌 혼란 속에서 해체되고 말 것이다. 어떤 한 집단의 관습들 중 어느 한 가지 것이 도전을 당하고 동요할 수 있을 지라도, 공인된 책무들의 전체는 의무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 의무의 힘이 없으면 사회의 붕괴가 곧 뒤따를 것이다. 인류의 오래된 사회제도로서 결혼은 아마도 정적 도덕의 범주에 들 것이다.
그렇다고 결혼이 완전히 정적 도덕에서만 머물지는 않는다. 베르그송이 분류한 동적 도덕의 성질도 결혼은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동적 도덕이란 동경(憧憬-아래 글의 '스피노자'의 정의 비교)의 도덕이다. 그것은 그 어떤 기성의 사회질서와도 무관하다. 이를테면 하나의 변이 물질(술을 만드는 효소나, 누룩처럼)처럼 그 사회 속에서 새로운 것이 생겨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그것은 정적 도덕처럼 개인에 대한 지속적인 압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가정하는 도덕이다. 결혼 생활 자체에 대한 도덕적 상황은 이 동적인 도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결혼을 대하는 우리의 의지와 태도, 그리고 유지와 관련하여 해석될 수 있는 도덕적 상황일 것이다.
또한, 동적인 도덕은 목적이 확실하지도 또 뚜렷하지 않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이상을 바라보고 이 이상을 고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상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또 가끔은 관습과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가끔 이러한 도덕의 충돌은 개인의 내부적 충돌로 이어지기도 한다.
종합해보면 결혼은 이 두 개의 도덕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책무와 금기가 요구되는 상황과 변이 물질과 이상의 세계가 공존하는, 현실에서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현실의 세계가 어쩌면 결혼이라는 제도일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추측해본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憧憬’을 이렇게 설명한다. 동경이란 어떤 사물을 소유하려는 욕망 또는 충동이다. 이 욕망이나 충동은 그 사물을 상기함으로써 강화되고, 동시에 그것의 존재를 배제하는 다른 사물을 상기함으로써 방해를 받는다.(에티카 제3 부 –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중 정서의 定義 제32 )
결혼제도의 뿌리에 해당하는 ‘욕망’에 대하여도 스피노자는 아주 명쾌한 정의를 했다. 즉, 욕망이란, 인간의 본질이 주어진 정서에 따라 어떤 것을 행할 수 있도록 결정된다고 파악되는 한에서 인간의 본질 자체이다. (에티카 제3 부 –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중 정서의 定義 제1 )
일요일 오후를 이렇게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