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형이상학과 화이트헤드 그리고 라이프니츠 (2)
욕계欲界 6천 중 제4천 도솔천兜率天은 오늘 태어나신 부처께서 호명 보살이라는 이름으로 4천 세를 산 곳으로 알려져 있다. 도솔천은 산스크리트어 Tushita(흡족한, 즐거움이 충만함의 뜻)의 음역으로서, 지족천知足天이라고도 부른다. 거기서 현생의 싯다르타로 태어난 날이 바로 오늘이다. (이 이야기는 니다나카타 Nidanakatha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이 경전은 인연담因緣談으로 부르기도 한다. 니다나카타는 자타카 앗타카타(Jataka-attakatha)의 일부로서 팔리어 불교문헌 중에서 가장 체계적인 부처 전기의 시초이다. 초기 경전 여기저기에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단편적인 부처에 관한 전기가 시기별로 일관되게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초의 불타전佛陀傳이라 할 수 있다. ‘먼 인연담’, ‘멀지 않은 인연담’, ‘가까운 인연담’의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에 이어서……
화엄경의 宗旨에 대한 견해는 사람마다 다양하다. 통일 신라의 고승이었던 의상은 화엄경에 대한 이해를 ‘화엄일승법계도’로 남겼다.(이른바 법성게法性偈로서 화엄경의 요약본이라 할 만하다. 용수 보살의 약찬게略纂偈와 함께 화엄경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화엄일승법계도’는 화엄경에 대한 의상 스스로의 깨달음을 7언 30구의 게송으로 도해한 것으로서 첫 구절은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법성원융무이상 제법부동본래적)으로 시작하여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궁좌실제중도상 구래부동명위불)로 끝난다.
법성(法性)이란 현존하는 세계의 모든 존재가 본래 원리를 그의 성품으로 삼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이 법성에 따르니 이것을 불교에서는 '제법(諸法, sarva-dh-arma)'이라고 표현한다.
無常한 존재 속에 불변하는 법성(法性)이 있다는 것은 모순처럼 보이나 이것은 법성에 어떤 구체적 형상이 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추측과 억측에서 비롯된 것이다. 법성은 생멸 변화하는 모든 형상으로부터 초월하여 존재하므로 만약에 어떤 형상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이미 존재와 그 생멸 변화에 일관하여 존재하는 상주 법성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그 법성을 일체 존재와 전혀 별개의 것으로 봐서도 안 된다. 전혀 다른 것이라면 일체 존재의 생멸 변화에 그런 법칙성으로 나타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법성과 존재는 같다고도 할 수 없고, 또 완전히 다르다고도 할 수 없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미묘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의상은 이것을 그의 법성게 첫 부분에 ‘법성원융무이상’(법성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다.)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화이트헤드의 경험 이론과 절묘하게 스친다. 화이트헤드는 모든 현실적 존재를 관계적(relational) 존재로 파악하면서 존재하는 그 순간 이미 자신과 타자의 선험을 종합하고 있다고 파악한다. 동시에 존재의 소멸은 이러한 선험이 후속하는 타자와 또 다른 객체로 이어진다고 파악한다. 즉 객체화(objectification)의 과정을 거친다고 인식하였다. (화이트헤드 《과정과 실제; 유기체적 세계관의 구성》 오영환 역, 민음사, 1991년)
법성이란 객체화된 존재의 자성이다. 자성自性이란(산스크리트어 svadhava) 모든 법(法)이 갖추고 있는 본성 즉, 모든 존재가 지니고 있는 변하지 않는 본성을 이르는 말이다. 즉 다른 것과 혼동되지 않으며, 변하지 않는 독자적인 본성을 의미한다. 화이트헤드가 파악한 객체화된 선험은 화엄경에서 자성, 즉 법성이 되는데, 이는 객체 이전의 존재이기는 하지만 선택적인 상황에 의해 자율적 자기 창조적으로 만들어지는 존재로서 관계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緣起에 대한 화이트헤드식 표현으로 볼 수 있다.(그가 연기를 이해했거나 또는 이해하지 못했거나)
라이프니츠의 단자론과 화엄형이상학의 관계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