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형이상학과 화이트헤드 그리고 라이프니츠 (3)

by 김준식


상입과 상즉(mutual penetration & mutual identity)


상입상즉(相入相卽), 모든 현상의 본질과 작용은 서로 융합하여 걸림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즉, 주관과 객관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이 일체가 된 마음과 현상, 보는 주관도 없고 보이는 객관도 없는, 현상계의 모든 사물이 서로 차별하는 일이 없는 상황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상호 개입과 상호 연계의 존재양식을 일컫는 화엄사상이다. 이러한 논리에 터 잡아 일(一)과 다(多)의 상입상즉(相入相卽)의 법계관(法界觀)이 마치 화엄의 인드라망(因陀羅網, 산스크리트어 indrjala)의 구조와 같다는 것이다.


무한한 우주 공간에서 ‘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空)’으로 돌려 상대방과 일치시키고, 나로 하여금 상대방이 생겨나는 원인의 역할을 하게 한다. 여기서 나를 상대방과 일치시키는 것이 상즉(相卽)이요, 나 자신으로 하여금 상대가 생겨나게 하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상대방 속에 들어가듯 하는 것을 상입(相入)이라 한다. 즉, 상입(相入)이 이것과 저것이 서로 걸림 없이 융합의 측면이라면, 상즉(相卽)은 서로 자기를 폐廢하여 다른 것과 같아지는 일체一體의 측면이다. 따라서 ‘상입상즉’은 ‘나’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를 희생해 우주와 혼연일체가 되는 것이다.


중국 서진의 도교 학자 곽상은 장자주莊子注에서 이와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의 삶이 아무리 사소 할지라도 그는 전체 우주를 그 존재를 위한 조건으로 필요로 하며, 우주의 모든 존재들 역시 어떤 형태로든지 그의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 가운데 단 하나가 부족하더라도 그는 존재할 수 없게 되고, 이 세상을 구성하는 원리들 중 단 하나가 파괴되더라도 그는 살아갈 수 없게 된다.”《장자와 곽상의 철학》 강중건 지음, 황지원 , 정무 옮김 예문서원. 2020.


이는 현장의 《화엄일승교의분제장(華嚴一乘敎義分齊章)》에 나오는 육상원융, 즉 모든 존재가 총상(總相) · 별상(別相) · 동상(同相) · 이상(異相) · 성상(成相) · 괴상(壞相)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존재 전체와 각 부분이 서로 원만하게 융화되어 있으며 또한 각 부분과 부분이 서로 원만하게 융화되어 있다는 의미인데 그 뜻이 대체로 비슷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변증법적 진입(dialectical penetration)의 문제를 짚어 보아야 한다. 화이트헤드는 통일성과 다수성, 대상성과 주체성과 같은 대립자들이 현실태에서 변증법적으로 융화된다고 파악하였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진입(즉 변증법적 진입)은 오로지 단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진입을 제시한다. 하지만 화엄에서는 통일성이 다수성으로, 다수성이 다시 통일성으로, 역시 주체성이 대상성으로, 대상성이 다시 주체성으로의 대칭적 진입, 즉 상입과 상즉의 상태까지 그 인식의 범위를 넓히게 된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단자), 그리고 화엄


라이프니츠는 그의 책 단자론에서 모나드(단자) 이렇게 정의한다. 《형이상학 논고》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씀, 윤선구 역, 아카넷. 2010.


1. 단자는 합성 체를 구성하는 단순 실체를 뜻한다. ‘단순’이라고 하는 것은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2. 합성 체가 존재하는 이상, 그것을 구성하는 단순한 실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3. 부분이 없다는 것은 크기도, 형태도, 가분성도 있을 수 없다. 단자는 자연의 참된 원자며 모든 것의 요소다.(메가라학파의 인식과 유사하다.)


4. 단자가 분해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단순 실체가 자연적으로 소멸하지 않는다.


5. 같은 이유로 단순 실체가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8. 그러나 단자는 반드시 어떤 성질을 갖고 있다. 단자의 양은 차이가 없으므로 만약 성질의 차이마저 없다면 단자는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물의 상태는 다른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4~8은 원자론)


13. 이 세부내용은 단일한 것 즉, 단순한 것 속에 다양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실제로 모든 자연적 변화라는 것은 점진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어떤 것은 변화하고 또 어떤 것은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단순 실체 안에는 부분이 없지만 상태의 움직임이나 여러 가지 관계 등이 존재한다.


16. 우리가 의식하는 어떤 미세한 생각일지라도 그 대상이 갖는 다양성이 포함돼 있음을 볼 때 우리는 단순 실체 안에서 다양성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정신이 곧 단순 실체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단자 안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13~16에서 화엄의 무애연기無涯緣起와 스친다.)


38에서 41 사이의 ‘신’을 ‘연기’로 대체하여도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38. 이렇게 보면, 사물의 궁극적인 근거는 하나의 필연적인 실체 속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실체 안에는 갖가지 변화의 미세한 부분이 흡사 원천 속에 있는 것처럼 존재해야 한다. 그 실체를 나는 ‘신’이라고 부른다.


39. 그런데 이 실체는 상술한 미세한 부분의 전체를 충족시키는 충분한 근거가 되고, 이 미세한 부분은 서로 도처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므로, '신'은 오직 하나뿐이며, 또 하나뿐인 '신'으로 충분하다.


40. 이 최고의 실체는 오직 하나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실체로서, 그것에 의존하지 않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며, 또 이는 가능적 존재로부터 단순하게 우러나오는 귀결이므로 제한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되도록 많은 실재성을 포함한다.(상입과 상즉)


41. 여기서 '신'은 절대로 완전하다고 하는 결론이 나온다. 완전성이란 피조물에 존재하는 제한이나 한계 따위를 제거해 버린 엄밀한 의미에서 적극적 실재성의 크기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제한이 없는 곳, 즉 '신'에게서는 완전성이 절대로 무한하다.(중중무진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즉 사법계四法界, 십현연기十玄緣起, 육상원융六相圓融, 상입상즉相入相卽을 설명하는 말로 치환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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