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어느날......

by 김준식

대선과 지선이 끝난 이 땅에 경제적 한파가 몰아치는데 권력자들은 유유자적하다. 모르는 것인지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인지 …… 난세다. 난세를 사는 내가 난세를 살았던 '공자'와 '장자'를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공자’와 ‘장자’는 약 200년의 시차가 있다. 그리고 서로 주장하는 바가 대척점에 있다. 난세를 살아내야 하는 방법론의 차이가 나는 것은 ‘공자’는 그래도 사람다운 것이 비교적 존중되던 춘추시대를 살았고, ‘장자’는 아사리판 전국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냈다. 그러니 둘의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논어》와 《장자》 ‘인간세’를 가만히 읽다 보면 거의 비슷한 길을 이야기함을 느낀다. 다만 대처의 방향이 다를 뿐이다. 왜? ‘장자’의 전국시대는 좀 더 급박한 전쟁통이었다.


2022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2300년 전 ‘장자’의 이야기를 읽고 뭔가를 느끼는 것은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고전의 援用을 통한 찌질한 자기 위로일 수 있다. 하여 단지 그들(‘공자’, 그리고 ‘장자’)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을 뿐이다.


권력은 항상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위협한다. 정치권력이든, 자본 권력이든 그도 아니면 교육 권력이든…… 그 아사리 판에서 곡예하는 장기판의 말들도 보인다. 아! 인간의 삶이여!!



《논어》, 《장자》 ‘인간세’


1. 禮과 心齋

공자가 가장 사랑한 제자 안회. 공자는 안회를 자신이 아는 한 가장 오랫동안 仁에 머물 수 있는 완성된 인격의 소유자라 극찬하며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하늘에 원망한다.(30대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여러 이야기와 대조해보면 40대에 죽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어쨌거나 공자보다는 일찍 죽었다.) 하지만 《장자》에 등장하여 마주하는 ‘공자’와 ‘안회’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우선 《논어》에서 마주하는 그들의 대화를 읽어보자.


안연이 인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기의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감이 인을 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가면 천하가 인을 허여 한다. 인을 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려있으니, 남에게 달려 있겠는가?”


안연이 “그 조목을 묻습니다.” 하고 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동하지 말아야 한다.”


안연이 말했다. “제가 비록 불민하나 이 말씀을 실천하겠습니다.” (논어 안연 제12 장)


공자는 인에 대해 묻는 제자에게 ‘예’로 돌아가 모든 행위의 준칙으로 삼으라 했다. 특히 예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공자의 주장은 《장자》에서 “자기가 갖추어야 할 것이 아직 불안정한데 난폭한 자의 행위 따위에 간섭할 겨를이 어디 있겠느냐” 는 힐난조의 말이 된다.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완전히 다른 이야기 같기도 하다. 《장자》에서 이들의 대화는 아주 길다.


요약하자면 위나라 경솔한 군주의 병폐를 고치기 위해 위나라로 가겠다는 안회의 의견에 공자는 반대 의견을 내놓는다. 안회는 현재 자신을 추스르기에도 부족할뿐더러 명예나 지식, 재물 따위에 의지하거나 좇다가 목숨을 잃고 말 것이라는 근거를 든다. 이에 안회는 안으로는 하늘을 따르고(內直) 밖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따르고(外曲) 말은 옛 성현에 빗대어 의견을 내니(成而上比)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공자는 대뜸 하늘과 사람, 옛 성현이라는 기준이야말로 여전히 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는 질책 한다. 이에 안회는 혼란에 빠진다.


안회는 말한다.

“저로서는 더 이상 모르겠습니다. 부디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심재 하라. 너는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통일하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도록 하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듣도록 하라.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밖에서 들어온 것에 맞추어 깨달을 뿐이지만, 기란 공허하여 무엇이나 다 받아들인다. 참된 도는 오직 공허 속에 모인다. 이 공허가 곧 심재이다.”


“귀나 눈을 안으로 통하게 하고 마음의 작용을 밖으로 향하게 하면 귀신도 찾아와 머문다. 이것이 곧 만물의 변화에 응하는 방법이다.” (《장자》 제4편 ‘인간세’, 제18편 ‘지락’)


논어에서 말하는 공자의 이야기, 즉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의 준칙으로 세운 ‘예’와 장자에서 말하는 귀나 눈의 작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잡념을 제거하여 허에 머물라는 ‘심재’에서 공통점은 없을까? 예가 인간의 “최고선”이랄 수 있는 인이 외재하는 형식이라면 심재는 내재하는 허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때, 내외가 분리되면 ‘인간세’의 관계는 불협화음으로 작동할 것이고 혼연일체라면 만물과 하나의 걸림도 없이 통하는 그야말로 도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차이점이라면 ‘공자’는 “하지 말라”(勿)는 강렬한 단 한 마디로 인간의 조건을 제시한다. 반면 ‘장자’는 언어의 한계를 넘나들면서 인간의 심리를 묘사한다.


“저 텅 빈 것을 보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에 눈부신 햇빛이 비쳐 환히 밝지 않느냐! 길함도 이 호젓하고 텅 빈 곳에 머무는 것이다.” (瞻彼闋者 虛室生白 吉祥止止) 《장자》 ‘인간세’


이러한 어법의 차이를 야구의 투수 공에 비유하자면 ‘공자’는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렬한 직구를, ‘장자’는 속도는 떨어지지만 예술적이고 절묘한 변화구로 말한다.


결국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으로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살아있는 입체적 삶의 면모를 상상할 수 있다. ‘공자’와 ‘장자’는 각기 다른 길을 냈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위대하고 동시에 비루한, 끝없이 흔들리면서도 일순 단단해지는 모순을 가진 일상의 삶을 사는 인간의 길!


2. 時中과 乘物以遊心


섭공자고와 중니의 대화는 사신으로 등용된 섭공자고가 군신 관계의 처세를 묻는 내용이다. 『논어』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자장(이름은 전손사(顓孫師)고, 자가 자장이다. 공자(孔子)보다 48살 연하다. 『논어』에 공자가 그를 다른 제자들과 견주면서 독특한 성격을 말하는 것으로 볼 때 특수한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 녹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하였다. (녹을 구한다 함은 벼슬길에 나서고자 한다는 의미이다.)


공자가 말했다. “많이 듣고 의심 나는 것은 잠시 유보하며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하면 허물이 적게 될 것이다. 많이 보고 미심쩍은 것은 유보하며 그 나머지를 삼가 행하면 후회가 적게 될 것이다. 말을 하는데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녹은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논어》 위정 제18 장)


섭공 자고의 질문은 훨씬 구구 절절하다. 사신으로 가게 된 자신의 처지는 성공과 실패 모두 해로울 뿐이라 한탄하며 이 재난을 어떻게 헤쳐 나가면 좋을지 묻는다. 중니의 대답은 한 술 더 떠서 세상 어디를 가나 떠날 수 없는 군신관계이니 운명이라 여기고 오직 충실히 일을 하고 자신을 잊으라 한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은 법언(속담)을 전하며 대답을 갈무리한다.


“평소에 있는 그대로를 전하고 지나친 말을 전하지 않으면 우선은 안전하다.”

“군주의 명령을 고치지 말라. 성공하려고 무리하게 권하지 말라.” (《장자》 ‘인간세’)


무도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지위와 그에 해당하는 책임을 바르게” 해야 함을 강조한 공자에게 신하의 말은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을 따를지 말지는 오로지 군주의 마음이니 간언이 반복되면 욕을 당할 것 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섭공자고의 두려움이 비롯되는 지점이다.


마땅히 그러한 “의”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공자’라면, ‘장자’는 “그저 사물의 움직임에 따라(제물) 마음을 유유히 자유롭게 풀어놓고(소요유) 어쩔 수 없는 상태에 몸을” 맡기라고 한다. 전제국가에서 군신관계란 생사여탈권이 군주에게 있는 현실에서 이에 대처하는 그들의 자세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같은 처방을 내리니 말이 오가는 가운데 신뢰를 쌓기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 말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는 것이다.


‘안합’과 ‘거백옥’의 대화에서 ‘장자’는 군주를 대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호랑이와 사육사, 말을 사랑하는 마부와 말의 관계에 빗대어 때에 맞지 않는 행동으로 화를 입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 당부한다. 군주가 절도 없이 굴면 같이 절도 없이, 방종하면 함께 방종해지는 것이 때에 맞는 행동이다. (《장자》 ‘인간세’)


공자라면 어땠을까? 유가에서 최고의 인격자라 일컬어지는 군자라면 “반드시 그러해야 함도 없고 그러지 말아야 함도 없으니 오로지 의에 따를 뿐”이라 했다. 사납고 부덕한 군주 앞에 두 사람이(공자와 장자) 서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의 행동이 절도가 없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를 했다. 어떻게 할까? 나는 두 사람의 행동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군주를 그대로 따라 할 ‘장자’에게서 그를 바로잡을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있고, ‘공자’에게서는 마땅히 그러한 바를 마음에 새기며 담담히 군주에게 화답하는 대화하는 모습을 볼 것이다. 결국 그들은 그 무도한 상황에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채 살아서 무사귀환했을 것이다.


때에 따라 ‘유연함’에서 ‘공자’와 ‘장자’는 만났으므로 아마 ‘공자’와 ‘장자’ 모두는 때를 잡아 미련 없이 군주를 떠날 것 또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3. 知와 無所可用


‘공자’는 제자들에게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서운해하지 않는” 군자가 되라고 가르쳤으나 제자들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여전히 원망스러웠나 보다. 어느 날 제자들을 불러 앉혀 놓고 물었다.


“너희들이 평소에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찌하겠느냐?”


이에 공자의 대표 제자랄 수 있는 ‘자로’, ‘염유’, ‘공서화’ 등은 만승, 천승을 읊으며 정치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어떻게 굳힐 것인지 원대한 포부를 내세운다. 그런데 무심히 악기를 연주하던 ‘증철(증석 또는 증점)’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다.


“늦봄에 봄 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관을 쓴 어른 5,6명과 동자 6, 7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에서 바람 쐬고서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 (《논어》 선진 제25장)


‘공자’는 감탄하며 너와 함께 하겠다고 화답한다. 50이 넘은 노구를 일으켜 14여 년간 중원을 주유하며 무도한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실천한 이가 ‘공자’다. 그런데 이 대화는 진정 ‘공자’가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짐작케 하니 그의 행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공자’의 이런 선택에서 ‘장자’가 지목했던 “부득이(不得已)한 삶” 의 모습을 본다. (《장자》 ‘인간세’)


장자는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이야말로 “그 능력 때문에 제 삶이 괴롭혀지는 셈”이라고 사당 나무가 된 상수리나무의 생에 빗대어 말한다.


“나는 쓸모 있는 데가 없기를 오랫동안 바라 왔다. 가령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어찌 이토록 커질 수 있었겠는가? 너도 나도 같은 하찮은 것이다. 어찌 서로 하찮다고 헐뜯겠는가?”(목수 ‘장석’에게 역사수-상수리나무가 하는 말)


상수리나무는 스스로 하찮다 했지만 실제로 이 나무의 위용은 대단하다. “크기는 수천 마리의 소를 가릴 정도이며, 재어보니 백 아름이나 되고, 그 높이는 산을 내려다볼 정도이며, 여든 자쯤 되는 데서 가지가 나와” 있다. 이런 나무를 보면서 장석은 이렇게 말한다. “그 나무로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을 짜면 곧 썩으며, 기물을 만들면 곧 망가지고 문을 만들면 진이 흐르며, 기둥을 만들면 좀이 생긴다”며 쓸모없다고 재단하는 인간의 기준. (《장자》 ‘인간세’)


자연이 창조한 웅대한 장관을 있는 그대로 누릴 줄 모르는 무지한 인간의 초라한 정신세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장자’는 그런 인간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일상적 이해의 파괴를 요구” 한다.


‘공자’가 제자들과 나눈 대화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넓은 땅을 소유하고 수많은 사람을 거느리더라도 그 또한 인간이 만든 울타리이니, 그 너머에 가없는 자연이 빚어내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것만 못하다.


‘인간세’의 마지막은 《논어》의 ‘미자 편’에 수록된 초나라에서 광접여가 공자를 만났다는 같은 에피소드에 조금 변한 노래다. 『논어』에 비해 좀 더 긴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붕새여, 붕새여, 어째서 네 덕이 약해졌느냐. 앞날은 기대할 수 없고 지난날은 좇을 수가 없다.”


상상할 수 있다. 전국 시대 식자라고 스스로를 일컫는 식자라면 필독서였을 《논어》를 읽고 또 읽었을 ‘장자’를! 사후에 정리하니 쓴 책이 다섯 수레가 넘었다는 ‘혜시’의 논리 정연한 주장을 날카롭게 부셔가는 “위대한 지적 능력과 변증적 능력, 비상하는 시적 능력, 샘솟는 아이디어를 가진 예외적 개성의 존재” 였을 ‘장자’에게도 ‘공자’는 분명 위대한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체감하는 현실에서 인간은 너무나 ‘위험’ 하고 ‘하찮았다’. ‘공자’처럼 배우기를 즐긴 대가로 사유해낸 그의 세계관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경지였다. ‘장자’는 눈을 감았다. 생각을 멈추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리고 눈을 뜬 ‘장자’는 붓을 들었다. 그의 길을(‘공자’의 길) 따라갈 수 없다면 다른 길을 내리라. 그럼에도 ‘장자’가 낸 길에서 ‘공자’의 그늘은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끝까지 살아가기라는 목표는 같았기에. 그리하여 장자가 썼다고 전해지는 ‘인간세’는 《논어》에 바치는 장자의 헌사(hommage - 오마주)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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