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날씨다. 어제 내린 비의 습기와 열기가 뭉쳐져서 거대한 사우나에 들어 있는 느낌이다. 숨 쉬기조차 힘이 든다. 하여 에어컨에 매달린다.
불교와 인연은 매우 깊지만 불교 잡지에 원고 청탁은 처음이라 고민하다가 보내겠다고 했는데 불교 학자도 아니고 승려도 아닌 내가 무슨 자격으로...... 겨울에는 강의까지 해 주기를 부탁하니 참 몸 둘 바 모르겠다.
오전에 고민하여 쓴 글이다. 주제는 화엄일승법계도에 대한 이야기다. 나라는 날이 갈수록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듯한데 편안하게 화엄 이야기나 하는 내가 참 한심해 보인다. 하지만 여러 가지에 의미를 두고 글을 썼다.
1. 법계
법계法界는 범어 다르마 다투(dharma-dhatu)를 의역한 말이다.
다르마 다투는 ‘현상 자체’ 혹은 ‘진실 자체’로 풀이될 수 있다. 이 말은 서양철학의 Noumenon(누메논)의 개념과 비슷하다. 누메논은 2~3세기경 로마 사람으로 추정되는 Sextus Empiricus의 저작에서 처음으로 발견되는 것으로서 직역하자면 '생각된 것', '생각하는 행위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Noumenon은 한자로 ‘예지체叡智體’로 번역되는데 ‘예지체’란 ‘현상체(Phänomenon)’와 상대하는 말이다. 이를테면 ‘예지체’는 '본체'이고 그 反影이 ‘현상체’라는 의미이다. 아마도 플라톤 2 원론의 영향으로 생겨난 말일 것이다.
누메논의 의미가 서양 철학에서 강화된 것은 칸트의 역할이었다. 칸트가 누메논의 의미로 사용한 개념은 물자체(독: Ding an sich, 영: thing-in-itself)로서 감각과는 독립적으로 파악되는 사물 또는 사건을 말한다.
불교에서 법法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통상적으로 법은 ‘사물의 근원’을 뜻한다.(이 지점에서 누메논이나 물자체, 예지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특히 大乘佛敎에서는 종지宗旨를 일컫는 말인데, 그 법에 ‘계’(아주 다양한 함의를 가지는 글자다. 특별히 ‘sphere’-구를 의미하기도 한다.)를 붙이니 곧 법계는 진리의 세계 그 자체를 상징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법계는 진여眞如와 비슷하게 쓰이기도 한다. 즉 우주에 상주常住 불변不變하는 보편普遍의 본체를 의미하며 이는 곧 절대적 진리의 세계를 뜻하게 된다.
2. 일승
브리하다라냐카 우파니샤드(Brihadaranyaka Upanishad)에 의하면 ‘일승一乘’(범어 Ekayāna)의 의미는 영적인 여정에 대한 은유로 표현된다. 불교에서는 ‘일승’을 이러한 우파니샤드의 개념에 기초하여 조금 더 확장하는데, ‘승乘’이란 중생을 깨달음으로 안내하는 부처의 단계적인 가르침을 뜻한다. 따라서 일승이란 부처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궁극적인 가르침의 과정을 말한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일승’이란 모든 중생을 성불하게 하는 부처의 유일한 가르침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3. 화엄은 너무 길어서 여기서는 생략
4. 화엄일승법계도의 출현
의상이 스승 지엄(당나라의 승려로 화엄종의 2대 조사)의 문하에서 화엄을 수학할 때이다. 꿈속에 형상이 매우 기이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의상에게 “너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저술하여 사람들에게 베풀어 줌이 마땅하다.”라고 하였고, 또 꿈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총명약 10여 알을 주었으며, 청의동자가 세 번째로 비결을 주었다.
스승 지엄이 이 말을 듣고 “신인이 신령스러운 것을 줌이 나에게는 한 번이었는데 너에게는 세 번이구나. 널리 수행하여 그 통보通報를 곧 표현하도록 하라.” 하였다.
의상이 명을 따라 그 터득한 바 오묘한 경지를 순서를 따라 부지런히 써서 『십승장(十乘章)』 10권을 엮고, 스승에게 잘못을 지적해 달라고 청하였다.
지엄이 이를 읽어 본 후 “뜻은 매우 아름다우나 말은 오히려 옹색하다.”라고 하였다. 이에 의상은 다시 번거롭지 않고 어디에나 걸림이 없게 고쳤다. 지엄과 의상이 함께 불전佛前에 나아가 그것을 불사르면서, “이 중에 부처님의 뜻에 맞는 것이 있다면 원컨대 타지 말기를 바랍니다.”라고 서원하였다.
불길 속에서 타고 남은 나머지를 수습하니 210자가 되었다. 의상이 그것을 모아 다시 간절한 서원을 발하며 맹렬한 불길 속에 던졌으나 마침내 타지 않았다.
지엄은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하여 칭찬하였고, 의상은 그 210자를 연결하여 게偈가 되게 하려고 며칠 동안 문을 걸고 노력했다. 마침내 삼십 구절을 이루니 그것이 곧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이다.(최치원崔致遠의 의상전義湘傳을 토대로 균여均如가 쓴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에 전하는 내용)
5. 그리하여 화엄일승법계도의 내용은?
존재의 본성은 서로 상입, 상즉하지만 두 모습이 아닌 법계라는 근본 영역 안에서 움직이지 않아 고요하다. 이름이나 형상, 차별이 없으니 지극히 깊고 미묘하며 장엄하다. 자성은 멈추지 않고 인연에 따라 이루어지니, 하나는 전체 중에 있고 전체는 하나 속에 있게 된다. 즉 하나는 전체이고 전체는 하나와 같다. 작은 먼지 속에 우주가 있고 무량한 시간은 곧 한 생각이다. 이로써 각각의 현상은 그 현상의 원리에 융섭 되니, 죽음과 삶, 그리고 열반이 언제나 조화를 이룬다.
화이트헤드는 이 상황을 전체적인 우주지평으로서의 공간 시간적인 연속체(the entire spatiotemporal continuum)라고 불렀다.(화이트헤드와 화엄형이상학, 김진, 2004, 울산대학교 출판부. 33쪽)
이하 생략
표지 그림은 예수가 부활한 뒤 처음 본 막달레나가 예수 몸을 만지려하자 예수가 Noli me tangere!(Don't touch me!)라고 하며 만지지 못하게 하는 장면이다. 러시아 이동 전람파 화가 Alexander Andreyevich Ivanov의 그림이다. 많은 함의가 있는 그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