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닦아 칼집에 넣음.

by 김준식

善刀以藏*


汗血修佩巾 (한혈수패건) 흥건한 피 수건으로 닦아,

鞘含保機鋒 (초함보기봉) 칼집에 넣어 날카로움을 지키리.

時時鳴利刃 (시시명이인) 때때로 날카로운 칼날 울텐데,

凝神外思䦟*(응신외사온) 정신은 모으고 생각을 멀리하며 견디리.


2022년 5월 11일. 아이들이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났다.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적막하다. 책이 출판되었다고 소식을 전했더니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 준다.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볼 때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일이다. 내뱉은 말에는 준엄한 책임이 따른다.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나이를 먹는 일이다.


더 이상 이 참담한 시대에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말고 《장자》 ‘양생주’의 ‘포정’처럼 '선도이장' 해야 한다.


* 양생주의 포정 이야기는 이러하다.


庖丁포정이 文惠君문혜군을 위해서 소를 잡는데, 손으로 쇠뿔을 잡고, 어깨에 소를 기대게 하고, 발로 소를 밟고, 무릎을 세워 소를 누르면, 칼질하는 소리가 처음에는 획획 하고 울리며, 칼을 움직여 나가면 쐐쐐 소리가 나는데 모두 음률에 맞지 않음이 없어서 桑林상림의 舞樂무악(상림의 무악은 殷은 나라 湯王탕왕의 음악)에 부합되었으며, 經首의 박자(經首경수는 咸池樂함지락의 樂章악장 이름이다. 咸池함지는 黃帝황제가 만들고 뒤에 堯임금이 增修증수하여 上帝에게 기우제를 지낼 때 연주한 音樂을 일컫는 말이다.)에 꼭 맞았다.

문혜군이 말했다.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

포정이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道인데, 이것은 기술에서 더 나아간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해부하던 때에는 눈에 비치는 것이 온전한 소 아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뒤에는 온전한 소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정신을 통해 소를 대하고,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기관의 지각 능력이 활동을 멈추고, 대신 신묘한 작용이 움직이면 자연의 결을 따라 커다란 틈새를 치며, 커다란 공간에서 칼을 움직이되 본시 그러한 바를 따를 뿐입니다.

經絡경락과 肯綮(긍계, 여기서 계는 살과 힘줄이 얽혀 있는 부분을 말한다.)가 칼의 움직임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데 하물며 큰 뼈이겠습니까?”

“솜씨 좋은 백정은 일 년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살코기를 베기 때문이고, 보통의 백정은 한 달에 한 번씩 칼을 바꾸는데 뼈를 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칼은 19년이 되었고, 그동안 잡은 소가 수천 마리 인데도 칼날이 마치 숫돌에서 막 새로 갈아낸 듯합니다.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 끝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가지고 틈이 있는 사이로 들어가기 때문에 넓고 넓어서 칼날을 놀리는 데 반드시 남는 공간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 때문에 19년이 되었는데도 칼날이 마치 숫돌에서 막 새로 갈아낸 듯합니다.

비록 그러하지만 매양 뼈와 근육이 엉켜 모여 있는 곳에 이를 때마다, 저는 그것을 처리하기 어려움을 알고, 두려워하면서 경계하여, 시선을 한곳에 집중하고, 손놀림을 더디게 합니다.

그 상태로 칼을 매우 미세하게 움직여서, 스르륵 하고 고기가 이미 뼈에서 해체되어 마치 흙이 땅에 떨어져 있는 듯하면, 칼을 붙잡고 우두커니 서서 사방을 돌아보며 머뭇거리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칼을 닦아서 간직합니다.”

문혜군이 말했다.

“훌륭하다.

내가 포정의 말을 듣고 養生의 道를 터득했다.”


* 張彥遠(장언원, 815년 ~ 879년)은 중국 당나라 때의 미술사가. 중국 最古의 繪畫史회화사 《歷代名畫記역대명화기》의 저자. 또한 書論화론 으로 너무나 유명한《法書要錄법서요록》을 편찬했다. 장언원의 역대명화기 중 한 구절을 인용함.


사진은 강서대묘의 벽화 일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