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약
화단에 작약 꽃이 피었다. 봄이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표적 꽃이다. 대개 음력 사월 초중순에 개화한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이다. 향기가 진해서 벌들이 아우성이었는데 오후에 내린 비로 함초롬하다.
작약을 인식하는 것은 시각이다. 화려한 모양의 꽃이 주는 시각적 효과(대부분의 꽃이 그러하지만)는 그 동안 내부적으로 축적된 미적 감각의 양과, 전혀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나이와, 그리고 그들의 삶의 형태와 상관관계를 가진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현상에 대한 인식은 개인적 경험에 의존할 가능성이 짙어진다.
물론 칸트 선생은 이 사실을 아주 어렵게 이야기 한다. “현상이란 인간의 인식대상이 감각에 주어진 소재(素材)를 주관적인, 인간에게 공통적인 직관(直觀)과 사고(思考)의 여러 형식에 의하여, 질서가 세워지는 곳에 성립 된다”라고 아주 장황하게 그리고 모호하게 설명하고 있다. 《Kritik der Urteilskraft 판단력 비판》 임마누엘 칸트 저/백종현 역, 아카넷. 2009.
그 외의 현상을 파악하는 감각 또한 개인적 경험의 틀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는 그 틀에 억지로 감각을 구겨 넣는 경우도 있다.
2. 아카시아
우리가 현상을 파악하는데 제일 먼저 사용하는 것은 感官이다. 오감으로 확인된 사실들이 조합, 분석, 인지, 선험과의 비교 등을 통해 일반화된다. 아카시아는 최초 후각으로 인지되어 시각에 의해 확인되고 다시 지각에 의해 탐색된다. 달콤함과 미량의 비릿함의 결합으로부터 비롯되는 고귀함, 혹은 쾌락적이기도 한 이 향기는 오월의 풍경에 흡착되어 우리의 지각에 각인된다.
오월 중순의 밤에 퍼지는 또 다른 향기가 있는데 그것은 밤꽃 향기다. 아카시아 향이 스러지면 피어나는 밤꽃의 향기는 사뭇 다른 격을 보여준다. 향기에도 격이 있는가? 이것은 판단과 선험의 문제다. 즉, 외부로 드러난 사실과 의식 내부의 상관관계에서 오는 단계적 인식의 과정은 향기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 단계적 인식은 다시 외부적 선험에 상응한다. 그리하여 현상이란 내부에서 외부로 이어지고, 다시 내부로 환원되는 일관된 흐름일 수 있다.
3. 밤
밤이 왔다. 모든 것이 실체를 감춘다. 눈에 보이는 형체는 어쩌면 불빛에 의해 왜곡된 것일 수 있다. 어쩌면 그것 또한 실체의 모습이다. 사물에 대한 인식은 감각기관을 통해 전달되지만 그것 또한 실체적 진실인가는 매우 모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