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義理에 대하여
義는 나 아我 위에 양 양羊이 있는 글자다. 내가 제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가 합해진 글자다. 양이란 예로부터 제사에 올리는 대표적 고기이다. 이집트와 성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번제(불로 제물을 구워 올리는 제사)의 핵심 제물이다. 내가 가장 좋은 양을 올리고 있는 형국의 글자가 義자이니 그 뜻은 나를 희생하고 또, 신명을 다하는 순수함과 열정이 있고 동시에 개인적인 강력한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理는 이치라는 뜻이다. 도리라는 뜻도 있다. 이 두 글자를 합하여 의리를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라고 풀이한다.
사마천이 쓴 사기는 기전체의 대표적 역사서이다. 기전체의 내용 중 열전이라는 것이 있다. 열전이란 각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을 열거하고 그의 업적을 쓴 것이다.
열전 중에 자객열전이 있다. 춘추전국시대는 은원이 얽히고설킨 시대여서 자객들 또한 많았지만 사기의 자객열전에 이름을 올린 자는 겨우 5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 5명은 조말, 전제, 예양, 섭정, 형가인데 正史인 사기에 이런 자객 열전이 있다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중 섭정의 이야기를 해 보면,
섭정은 지軹땅의 심정리深井里 사람으로 무예에 뛰어난 장수였으나 음모에 휘말려 사람을 죽이고 그 원수를 피해서, 어머니와 누이를 데리고 제齊나라로 도망가서, 백정을 직업으로 삼고 살았다.
섭정에게 자객의 역할을 부탁한 사람은 복양濮陽사람 엄중자嚴仲子인데 엄중자는 전국 시대 한나라의 한애후韓哀侯를 섬겼고 그 반대파는 재상 협루俠累였다. 애후가 죽자 협루는 반대파인 엄중자 일파를 모조리 죽여버렸는데, 겨우 엄중자만 목숨을 보전하고 여러 곳을 다니며 협루에게 복수해 줄 사람을 구했다. 마침 엄중자가 제나라에 이르자 소문에 섭정이라는 영웅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찾아가 금 백 냥을 바치며 회유했다. 하지만 섭정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때문에 그 일을 맡지 않겠다고 거절한다.
세월이 지나 섭정의 어머니가 죽자 섭정은 자신을 알아주었던 엄중자를 찾아가 그 일을 하겠다고 한다. 자신을 알아준 사람에 대한 의리인 셈이다. 어쨌거나 섭정은 협루를 죽이고 목적을 달성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이 또한 의리로서 열전에 이름을 올린 이유다.
사마천이 자객열전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의리였다. 이미 사마천이 살았던 그 시절에도 의리가 땅에 떨어지고 제 이익만 찾아 이리저리 쏠려 다니는 무리들이 세상을 지배했던 모양이다. 죽음조차 가볍게 여기는 섭정의 의리는 누구에게나 요구할 수 없는 것이지만 평범한 의리는 꼭 자객들에게만 요구되거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으로부터 친구, 직장과 사회, 그리고 국가 민족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요구되는 의리는 종류와 형태가 다양하지만 그 핵심은 한결같이 나의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유지하는 것이다. 가끔 진심은 예리할 수도 있고 또 무딜 수도 있다.
2022년에 통용되는 언어로 ‘의리’를 약화시켜 말한다면 아마도 ‘배려’나 ‘호혜의 평등’으로도 볼 수 있다. 마음을 준 만큼 그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이 어쩌면 계산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가끔 상대방에게 너무 먼 不知不溫의 경지를 들먹이며 오로지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나와 또 다른 사람을 본다.
비록 의리의 뜻, 깊은 내부에는 ‘나’의 욕망이라는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도대체 개인적 욕망 한 자락 없는 일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의리를 지키는 것은, 마땅히 유지되어야 할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혼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시정잡배들의 의리인데 그들의 의리가 의리라고 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순수한 동기에서 비롯된 자기희생의 결여인데 설사 완전한 의미의 의리라 하더라도 의리가 수단화되면 그것은 의리라기보다는 힘에 의한 강요나 지배가 될 수 있다.(이 문제는 사실 민족이나 국가로 치환해보면 의리라고 표현된 강요와 강제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