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에 대하여
《장자》에는 여러 만남 이야기가 있다.
<인간세>에 등장하는 뛰어난 목수 ‘장석’과 ‘역사수’의 만남, <응제왕>의 ‘계함’과 ‘호자’의 만남, 그리고 <천운>에 등장하는 ‘노자’와 ‘공자’의 만남, <도척>에 등장하는 ‘공자’와 ‘도척’의 만남 등이 있다. 대체로 이 만남의 조건은 이러하다. 만남 이전에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가 우연한 기회에 마주하게 되고 좋고 나쁨을 떠나 서로의 진면목을 알게 된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삶을 마주하는 것이고, 동시에 상대방과 내가 각자의 삶을 서로에게 공개(한정적이기는 하지만)하는 순간이다. 비록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만남 동안 나와 상대방은 일정 부분 삶을 공유하게 된다. 영어 ‘meet’의 어원 중에는 ‘find’가 있다. 상대를 만나는 순간은 상대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자 ‘會’는 모을 集과 더할 增이 합하여 변형된 會意자인데 ‘더하다’는 의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만남은 더러 산술적 계산이나 표면적인 것 이상의 뭔가가 더해지기도 한다.
《장자》에 등장하는 만남처럼 우연히 만나고 또 흔적 없이 헤어지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약간은 낯선 사태일 수 있다. 지극히 계산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입될 수 있는 여러 개의 조건과 잔존할 수 있는 여러 개의 단서들이 거의 없는 만남은 사실 상상에 가깝다. 서로에게 걸린 이익의 강도에 따라 움직이는 천박함은 이미 우리의 삶에 체화된 지 오래다.
하지만, 거의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어떤 이익의 고리도, 어떤 잔존하는 조건도 없는 만남이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지난 15일 밤, 매우 영광스럽게도 나는, 우리 지역의 여러 高手들과 함께 했다. 그 자리의 본래 취지는 한글 서예가이신 '솔뫼(松岡) 천갑녕' 선생의 책 출간을 축하하기 위한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의 주선으로 만들어진 자리였다. 대부분이 예술가이신 솔뫼 선생의 벗들이 모이는 자리에 예술과는 전혀 무관한 내가 함께 하였으니 이는 순전히 이 만남을 주선하신 여태훈 대표님의 덕이다. 솔뫼 선생과 나는 생면부지인 관계였고 다른 분들도 거의 그러했다. 나이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이 서로 다른 고수님들과의 만남이었지만 불편함도 어색함도 그렇다고 썩 친밀함도 없는 淡淡한 만남이었다.
이틀이 지나 생각해보아도 담담함의 여운이 있다. 담담함은 여운이 없어야 하는데 여운이 있으니 담담함이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 應會: 중국 서진(西晋)의 문인인 육기(陸機)의 문부(文賦)에 등장하는 말로서 ‘와도 막을 수 없고, 가도 붙들 수 없는’ 돌발적인 만남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