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중학교 철학수업(57)

제2 권, 제4 장, 변증의 산맥, 1. 도덕경 산책

by 김준식

* 異見이 있을 수 있음.


1. 《도덕경》산책


1) ‘노자’와 《도덕경》


노자는 춘추시대 초나라 사람이다. 그가 썼다는 《도덕경》은 81장으로 분류되어 있고 5000자로 되어 있다. 《도덕경》은 대부분 완전한 문장으로 되어있지 않아서 문학 작품, 특히 시의 느낌이 강하다. 짧은 글 속에 시적인 운율과 함축을 품고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도덕경의 한글 해석은 학자들마다 다양하다.


도덕경의 내용은 해석의 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매우 넓고 깊다. 특히 제목의 ‘도(道)’와 ‘덕(德)’은 매우 다양하고 깊은 함의(含意)를 지닌다. 경(經, 경전)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공부하는 '변증법'은 서양 철학에서 시작되어 이름 붙여진 논증의 방법이지만 《도덕경》에서도 그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여러 가지 논증을 발견할 수 있다. 81장 전체가 변증의 논리 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다.


제1 장 을 보자.(1) ‘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을 ‘도’를 통해 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도’는 "이렇고 저렇고 한 것이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문득 ‘도’라고 말하여지는 것은 ‘도’가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써 ‘도’와 ‘도’ 아닌 것(비록 ‘도’로 불리기는 하지만)을 대립시킨다. 학자들에 따라 문장 속에서 ‘도’를 ‘도’ 아닌 것과 구분하기 위해 ‘참된’ ‘바른’ 등의 수식어를 ‘도’ 앞에 붙인다.


조금 쉽게 한자 그대로 ‘도(道)’를 풀이해보자. 한자 ‘道’는 머리수(首)와 쉬엄쉬엄 걸어갈 착(辵)이 합쳐진 회의(뜻이 합쳐진) 자다. 그대로 해석해보면 머리(首)를 마음으로 보고, 쉬엄쉬엄 걷는 모습을 몸으로 보아 마음과 몸이 천천히 같이 움직인다는 의미가 된다. 즉, 머리(首)가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몸이 따라 움직이는 것이 바로 ‘도’라는 뜻이 된다. 여기에는 어떠한 가치 기준이 개입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이 행동을 ‘도’라고 부르는 순간, 즉 언어로서 한정하는 순간 그 ‘도’는 진정한 ‘도’가 이미 아니라는 것이다.


뒤이어 나오는 명(名 – 이름)에 대한 논의는 앞의 ‘도’에 대한 논증의 심화 또는 예시일 수 있다. 즉 실존하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순간, 그 사물은 불려진 이름의 틀에 갇혀버려서 실체와는 다른 것이 부가되기도 하고 또는 실체와는 어긋나거나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본질이 훼손될 수도 있다.


2) 노자의 ‘도’


노자의 ‘도’에 관한 생각은《도덕경》전편에 걸쳐 나타나 있지만 제4 장(2)의 내용은 노자의 '도'에 대한 생각을 또 다른 관점을 읽을 수 있다. 노자가 생각하는 ‘도’는 충(沖), 즉 ‘비어 있음’으로 생각한다. ‘비어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없는 것'이라기보다는 '있던 것이 없어진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처음부터 없는 것은 비어 있다고 쓰지 않는다.(사실 처음부터 '없다'는 말을 논리상 불가능하다. '없다'라고 쓰는 순간 '있다'라는 개념이 대립된다. 즉, 있는 것이 사라진 상황이 '없다'이다.)


또 ‘비어 있음’이라고 쓴 것은 범위가 한정된 것(원문의 沖을 설문해자에서는 빈 그릇에 비유)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래서 대립적인 개념인 ‘채우다’를 사용하여 비어 있음을 더욱 강조한다. 하지만 결코 채울 수 없다고 단정한다. 역시 이것은 한정적 의미인 ‘채울 수 있다’의 대립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노자의 ‘도’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 유추될 수 있다. ‘도’는 ‘도’라고 부르는 순간 ‘도’가 아니다. ‘도’라고 범위를 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범위 없는 상황을 대립시킨다. 그것을 ‘충’이라고 표현했다. 즉 ‘비어있다’라는 말을 통해 채워진 것이 사라진 이미지를 가져온다. 이를테면 채워진 상황과 비워진 상황을 통해 한계가 있음을 슬쩍 암시한다. 그러다가 다시 ‘채울 수 없다’라고 그 한계를 없애버린다.(비어 있는 '도'로부터 무한계의 '도'로 확산 됨)


그러다가 다시 '도'를 연못에 비유한다. 연못은 아마도 근원적 상황을 나타내는 비유일 것이다. 하지만 연못이라고 하니 범위가 확연하게 좁아진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 연못을 만물의 근본에 비유한다. 근본이라 함은 무엇인가? 만물의 시작점이니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나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무한계의 '도'는 곧 근원의 '도'로 치환 됨)


연못은 이를 테면 우주일 수도 있다. 만물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우주의 모든 움직임과 구성의 이면에는 불변의 진리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것이 ‘도’라는 이야기로 합쳐진다. '정'과 '반'이 합쳐지면서 새로운 개념이 생성되고, 또 그것의 반대 논리가 등장하여 합쳐지는 지속적인 변증의 과정이 《도덕경》 밑으로 흐르고 있다.


(1)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2) 道, 沖 而用之, 或不盈. 淵兮! 似萬物之宗.(도, 충 이용지, 혹불영. 연해! 사만물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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