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 그 거대한 산맥 앞에서
변증, 그 거대한 산맥 앞에서
역시 변증법은 아이들에게 어려운 주제다. 거기다가 한문이 섞여있는 노자 이야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늘 아주 희미하게 변증의 과정, 즉 정반합에 대한 관계를 어림짐작으로나마 이해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이미 2년 동안 어려운 과정을 함께 하며 지내왔다. 중학교 아이들은 잠시도 집중이 어렵다. 자신들의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다. 자기들끼리 소곤거리고 웃거나 아니면 내가 준 프린터물에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이 상황 속에서도 나는 지속적으로 변증의 예를 들고 과정을 설명하며 또 칠판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유도하고 그 질문에 최선을 다해 답한다. 정말 수업 시간 동안 아이들을 무한 신뢰하며 수업을 진행한다.
어려운 주제의 공부를 할 때마다 자주 좌절한다. 심지어 절망적인 상황조차 느끼기도 한다.
오늘의 주제는 ‘道’다. 지난주부터 노자의 도덕경 첫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데 한자 ‘道’에 대하여 십여 차례 설명했지만 아직 아무도 관심이 없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때 좌절을 넘어 절망에 이른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북돋우며 아이들에게 새롭게 설명한다.
사실 ‘道’는 어른에게 설명하기도 어렵다. 무엇을 ‘道’라고 부를 것인가는 매우 거대한 주제다. 그러니 아이들이 모를 수밖에. 설명할 구체적 언어가 없어서 사실 그냥 ‘道’라고 부른다. 오늘은 방법을 바꿔서 우리가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즉 진짜 보이는 '길(도로)'을 대상으로 하여 이야기했다.
먼저 ‘길’의 종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길’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그 정도까지 나아가면 벌써 아이들은 어지러워한다. 여기와 저기를 연결하는 ‘길’을 가정하고, 바른 ‘길’과 굽은 ‘길’과 빠른 ‘길’과 느린 ‘길’을 설명한다. 그리고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설명한다. 오솔길을 누군가 물었다. 듬뿍 칭찬을 해 주고 오솔길도 ‘길’의 분류에 같이 쓴다. (하지만 여전히 실체적인 ‘길’ 만을 이야기한다. 형이상학적인 ‘길’에 대해 언급을 최대한 자제한다.)
어느 정도 ‘길’의 종류와 역할, 그리고 효용에 대해 이해하면 이제는 그 ‘길’의 생성 원인을 이야기한다. 즉 그 ‘길’이 왜 필요한가를 이야기한다.(효용과 비교하면서) 그 ‘길’이 필요하다면 누구에게 어떤 목적으로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침내 실체적 ‘길’에서 형이상학적 ‘길’로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즉, 앞에서 말한 대로 그런 ‘길’을 자신들의 삶에서 찾아 다음 시간에 이야기해보기로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왔다. 다음 시간에는 그 ‘길’을 걷는 존재들의 이야기로 옮아 갈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