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중학교 철학 수업(59)

불교 철학

by 김준식

* 중학생들에게 불교 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거대한 불교 철학의 바다에서 변증법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하고, 그것을 아이들이 이해할만한 단어와 논리로 이야기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하고 오래 고민한 결과 불교 철학의 말단이라도 중학생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하였다.


2. 중중무진 인연 이야기


1) 불교 철학의 이해


석가모니[1]는 깨달음 이후에 형이상학적 철학 문제는 가능한 논의하지 않으려 했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러한 형이상학적 논쟁을 통해서는 어떠한 실천적 의의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즉, 석가모니는 실천적인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과정이 아닌 형이상학적 문제[2]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중아함경[3] 권 60, 전유경(箭喩經)에 석가모니의 이런 방침과 태도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만동자(蔓童子, 말룽꺄뿟타, Malunkyaputta)라는 비구가 부처님을 찾아와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이 세계는 영원한가? 무상(無常)한가? 끝이 있는가 없는가? 영혼과 육체는 하나인가 둘 인가? 여래는 사후에 존속하는가 안 하는가?”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이런 문제에 대해 다른 종교에서는 명확한 답변을 해주고 있는데 석가모니의 교설, 즉 불교에서는 그러한 해명이 없으므로 몹시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는 만일 끝까지 부처님께서 답변을 해 주시지 않는다면 부처님 곁을 떠나겠다는 단호한 태도까지 보였다.


이에 석가모니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독 묻은 화살을 맞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받을 때, 그 친족들은 곧 의사를 부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되오. 나는 먼저 화살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아야겠소!”

“성과 이름은 무엇이며 어떤 신분인지를 알아야겠소!.

“그리고 그 활이 어떤 나무로 되었는지, 화살은 또 어떤 나무 아니면 대나무로 되었는지를 알아야겠소!”

“또 화살 깃이 매의 털로 되었는지 닭의 털로 되었는지 먼저 알아야겠소!”


만약에 이와 같이 말하고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 모든 것을 알기도 전에 온 몸에 독이 번져 죽고 말 것이다. 나(석가모니)는 세상이 무한하다거나 유한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런 문제는 “깨달음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비유가 의미하는 바는 실제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쓸데없는) 사변적 [4]이고 형이상학적 논의에 빠지는 것을 위험하다고 보았다. 인생의 보다 중요한 문제는 현실적인 고통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대응해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이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일차적으로 자신에게 부닥친 현실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2) 공(空)의 개념


그러나 석가모니 사후 석가모니의 많은 이야기들을 모아 책의 형태로 만들어내면서(이른바 불전결집) 석가모니의 말에 대한 체계를 세우게 되었고 그러한 체계에 대한 제자들과 후대의 많은 승려들이 나름의 해석을 내놓으면서 불교 철학이 형성되게 되었다.


불교 철학의 핵심은 '연기(緣起)'인데 그 연기의 바탕이 되는 사상이 바로 공(空) 사상이다. ‘공’(空 산스크리트어 sunyata, 영어 emptiness)이라는 용어는 산스크리트어 ‘sunya’(텅 빈)라는 형용사나 ‘sunyata’(공한 것)이라는 명사를 번역한 말이다.


‘공’의 개념은 매우 특수하다. ‘공(空)’사상은 초기 불교의 연기설(緣起說)을 재해석함으로써 석가모니의 기본 입장을 보다 명확하게 밝힌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이다. 따라서 ‘공(空)’사상은 불교를 사상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철학사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불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공’ 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만물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말로서 ‘공’이라는 말은 곧 인연(因緣)[5]이라는 의미이다.


용수 보살(나가르주나)은 그의 저서‘중론(中論)’[6]에서 인연으로 생겨난 모든 것을‘공’하다고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다른 사물들과 서로 얽혀 있는 관계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존재이므로, 그 모양이나 형태, 또는 그 성질이 전혀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물들은 단지 원인과 결과로 얽혀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 있어서 각 사물 스스로에게는 자아(독립적 의지)가 없기 때문에 그 상황을 무아(無我)라고 한다. 공(空)의 개념은 여기서 출발한다. 즉, 각 사물은 자아(自我)가 없으므로 무아(無我)인데 그 상황을 공(空)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말은 자성(自性)이 없다는 말과 같다. 여기서 자성이란 독립적인 의지를 가진 실체인데, 따라서 실체가 없다는 말을 우리는 무자성(無自性)이라 부른다.


정리하면 독립적 자아(자성)가 없으니 무아이고 그것은 무자성, 즉 공이다. 그런데 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맨 처음의 자성이 없는 이유, 즉 일체는 연기(만물은 원인과 결과로 해서 생성되었기 때문)로 해서 생성되었기 때문에 무자성이 곧 연기의 근거가 되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 연기, 즉 무자성은 바로 공이다. 따라서 空은 인간의 언어 논리에 의한 판단을 부정한다.


[1] 석가모니(釋迦牟尼, 산스크리트어: 샤캬 무니 기원전 560년 경~기원전 480년 경)는 불교를 창시한 사람으로서 흔히 여래 10호(세존 · 석존 · 불 등등)의 존칭으로 불리며 그의 본명은 ‘싯다르타 가우타마’이다. 일반적으로 서양에서는 가우타마 붓다(영어: Gautama Buddha)라고 부른다. 샤캬족의 국가인 샤캬 국(현재의 네팔)에서 국왕 슈도다나(한자 정반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가 윤회하는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29세 때 출가하였다. 처음에는 당시 인도의 보통 수행자의 수행법을 따라 고행을 하였으나 곧 무의미함을 깨달아 독자적인 수행을 계속한 끝에 마침내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수행하여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정등각)을 성취하고 부처(Buddha, 佛陀)가 되었다. 이후 인도의 여러 지방을 편력하며, 포교와 교화에 힘썼고, 쿠시나가라에서 입멸하였다.




[2]‘나와 세계는 유한(有限) 한 것인가, 무한(無限) 한 것인가?’ ‘신체와 영혼(靈魂)은 하나인가 혹은 별개의 것인가? 완전한 인격자인 부처는 죽은 뒤에 생존하는가 혹은 생존하지 않는 것인가? 등의 문제.




[3] 아함경: 산스크리트어 '아가마(āgama)'를 소리대로 한자로 차음 하여 '아함경'이라 하였다. 그 뜻은 '전승(傳承)' 즉 부처의 말씀을 기록해 전래됐다는 것이다. 즉, 디가 니까야(Dīgha-nikāya, 장부), 맛지마 니까야(Majjhima-nikāya, 중부), 상윳따 니까야(Sayutta-nikāya, 상응부), 앙굿따라 니까야(Aguttara-nikāya, 증지부), 쿳타카 니까야(Khuddaka-nikāya, 소부) 5개의 니까야로 구성되어 있다.




[4]실천이나 경험을 통하지 않고, 사고작용이나 이성만으로 사물의 진리에 도달하려고 하는 일이나 방법. 실천이나 경험을 중히 여기는 입장에서는 추상적 이론이나 심지어는 공론(아무 소용이 없는 논의)의 뜻이 됨.




[5]인연(因緣): 불교의 인(因)과 연(緣)을 같이 이르는 말. 인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은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다. 석가모니는 “모든 것은 인(因)과 연(緣)이 합쳐서 생겨나고, 인과 연이 흩어지면 사라진다.”라고 했다. 인연은 곧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줄임 말이다.




[6]중론 또는 중론송(中論頌): 인도의 용수가 지은 449구의 간결한 게송 형식의 책으로서 주요 내용은 연기, 공, 무자성에 대한 논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