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시집 선성 서문을 쓰다.

by 김준식

2022 한시집 선성(繕性) 서문


밤이 되어 조용하니 멀리 소쩍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벌써 계절은 가을을 준비하고 있는가!


2022년 상반기, 대한민국에 사는 나는 참으로 많은 문제를 겪으며 보냈다. 유형도 다양하고 깊이도 다양한 문제를 멀찌감치 또는 가까이 보면서 뾰족한 대책 없는 생각과 갈등으로 시간을 보내 버리고 말았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늘 문제가 있다. 문제 없는 세상이란 마치 증류수 같아서 효용 가치가 별로 없다. 문제는 있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많으면 물이 흐려져서 마시지 못하는 것처럼 역시 효용이 없다. 살아 오는 내내 늘 이런 경지를 요구 받는다.


올해 한시집 제목은 ‘繕性’(마음을 깁다)이다. 2021년 11월에 이 제목을 지을 때 지금의 상황을 예측하고 짓지는 않았는데, 지금 이 제목을 생각해보니 이렇게 적절할 수가 없다. 2022년 상반기를 보내며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거의 누더기가 되었다. 그것을 기워(이어 붙여) 다시 평상심을 회복하자는 의미로 해석하니 얼핏 소름이 돋는다.


‘繕性’은 《장자》 제 16편 제목이다. 마음을 깁는다(修繕: 수선)는 의미가 있다. 이 편은 제 15편 ‘刻意’와 연결되는 부분이 많은데 ‘刻意’는 공교롭게도 2020년 나의 한 시집 제목이었다. ‘刻意’에는 다섯 유형의 인물이 등장한다. ‘비분강개형’ 인물이 그 처음인데 마치 전국 시대 초나라의 屈原을 떠올리게 한다. 두 번째 유형은 ‘교육자형’ 인물이다. 세 번째는 ‘관료’이고, 네 번째는 ‘현실도피형’ 즉 ‘隱者’이며 다섯 번째는 ‘구도자형’이다.


‘繕性’에서는 ‘刻意’에서 말한 다섯 유형의 인물을 평가한다. 비분강개형이나 교육자형과 구도자형을 몽매하다고 바로 공격한다. 은자형에 대하여는 타이밍을 놓친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한다. 관료는 당연히 욕을 얻어 먹는다. 결국 선성에서 주장하는 바는 그런 유형에 얽힌 삶을 止揚하고 지(知)와 념(恬)을 중심으로 하여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즉 지를 바탕으로 하면서 편안한 마음이 서로 조화(和)된다면 인간의 본성은 세상과 조화되고 동시에 새로운 질서(理)가 생겨난다고 《장자》 는 이야기한다. 뭔 뜬구름 잡는 소리인가! 뭐 그래야 된다고 치자.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2300년 전에도 어려웠고 지금도 매우 어렵다. 물론 이 이야기는 ‘장자’의 목소리는 아니다. 명말 청초의 王夫之 등의 후세 도교학자들에 의한 첨언이나 해석이 가미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2022년 우리는, 그리고 나는 어떻게 마음을 기울 것인가? 고민은 나이를 먹을수록 해가 더해 갈수록 깊어지기만 한다.


2014년 처음으로 이렇게 책을 만들었으니 올해로 8년째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詩를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여기 있는 것은 그저 詩의 형식만 빌린, 글을 쓴 그 날 또는 그 순간 내 삶의 짧은 푸념에 가까운 글이다. 시인들이 쓰는 詩는 내가 쓰는 이런 글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시인들은 절묘한 비유와 위트, 그리고 사물을 관통하는 거시적 안목과 날카로움이 있다. 나는 그 경지를 꿈꾸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절대로 절대로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저 너절하고 불분명한 마음의 모습을 20자 혹은 28자에 뭉쳐 놓으려고 노력한다. 가끔은 정형적인 형식을 버리기도 한다. 내 마음에서 생기는 생각의 부스러기들을 툭툭 털어내고 그나마 중요한 것만 문자를 통해 남기려고 애쓰는데 이것이 어쩌면 늘 상처받아 누더기가 된 스스로의 마음을 깁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그 생각과 마음으로 글을 쓴다.


지금은 한 여름을 앞둔 장마철이다. 습기가 일상을 위협하고 더불어 숨 막히는 열기는 덤이다. 하지만 곧 서늘해 질 것이고, 마침내 겨울은 올 것이다. 오로지 현재만 존재하는 이 절대의 순환 속에서 항상 현재였던 과거의 순간을 문자로 結氷시켜 저장해 두는 정도가 내가 이 책에 부여하는 최선의 의미다.


한해의 중간쯤에 다시 마음을 다 잡기 위해 서문을 쓴다.


2022년 7월 13일 내 방 책상에서 중범 김준식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