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일요일 아침, 걸으며 한 생각
나는 매일 우리 동네 호수 주변을 걷는다. 내가 걸으러 나가는 시간은 늘 새벽 4시인데, 오늘은 비가 오는 바람에 30분쯤 늦게 나갔다. 비가 제법 많이 오는 오늘 같은 날, 걷는 사람의 대부분은 연세가 든 분, 즉 '노인'들이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젊은 사람들은 비 오는 일요일 아침잠을 즐길 것이다.
그런데 ‘노인’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 사회의 ‘금기어’가 되었다. 21세기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인으로부터 '노인'이라고 말을 듣는다는 것은 이제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압박과도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늙었다’, ‘노인’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노인’은 지혜로운 사람을 상징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은 당연히 많은 삶의 지혜를 터득하였을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우리가 아는 중국의 ‘노자’는 특정한 시대에 살았던 한 인물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기보다는, 인생의 의미를 터득한 모든 현명한 노인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노인들은 더 이상 지혜롭지 않다. 쌓아 온 경험도 지금 사회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이미 그런 지혜와 경험은 늘 들고 다니는 스마트 폰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래서 노인들은 정말 늙어간다. 나도 이미 60이 넘었으니 나이 든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더 이상 지혜도, 더 이상 경험도 효용가치를 잃어버린 내가 남아있는 삶을 살면서 존재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분명 어딘가에는 노인의 효용가치가 있을 것인데……이 마저도 욕심인가!
먼저 하지 말아야 할 일과 해야 할 일을 고민해 본다.
제일 먼저 자만을 버려야겠다. 노인이 되면 사만에 빠지기 쉽다. 사만이란 네 가지 자만(自慢)을 말하는 불교적 용어인데, 만(慢)이라 함은 스스로 잘 못한 것을 보고도 잘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두 번째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말하는 과거 회상 혹은 과거지향적인 발언들과 행동들을 줄여야겠다. 인생에서 한 때 모든 것이 충만하고 거침없던 시절이 없었던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노인이 되면 육체의 에너지가 떨어지니 방어기제에 따라 과거지향적이 되기 마련이다.
세 번째 말과 글을 조심해야겠다. 말을 줄여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입에서 나오는 순간 회복할 수 없는 말도 무섭고 수정은 가능하지만 역시 그 역기능이 무서운 글도 조심해야겠다.
여기저기 찾아보면 분명히 해야 할 일이 나올 것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생각과 동시에 행동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 몸이 느려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니 그것을 보상하는 방법은 더 빨리 움직이는 것이다.
나름 가지고 있는 것(나에게는 변변치 못한 이런저런 지식이 있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조각조각 흩어진 지식이지만 나에게는 아주 작지만 그나마 꿰어진 지식이 있다.)을 베푸는 기회를 자주 만들고 베풀어야겠다. 물론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요구가 있다면 반드시 베풀어야겠다.
일단 오늘 아침 비 오는 연못 가를 걸으며 이 정도만 생각했다. 글로 남기는 것은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약속의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