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의 꾸짖음

by 김준식

오늘은 국제 호랑이 보호의 날이다. 야생 호랑이가 사라진 한반도에는 멧돼지가 설친다. 호랑이가 산맥을 지배하던 시절 감히 멧돼지 따위가 숨이나 쉬었겠는가!


여우나 늑대는 호랑이 울음소리에 털이 곤두섰을 것이고 더불어 인간 세상도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연암 선생이 쓴 ‘호질(虎叱)’은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랑이의 날 호랑이의 꾸지람을 들어보자.


'호질'에는 다양한 비유가 숨어있다. '호질' 앞부분에는 호랑이가 두려워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다시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었을 때 호랑이에게 붙는 창귀倀鬼가 등장한다.


사람을 두 번 잡아먹은 호랑이에게 붙는 창귀가 이올彛兀이다. 호랑이가 밤이 되어 배고프다고 말하니 이올이 이렇게 말한다.(그러니까 호질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이미 사람을 먹어 본 호랑이다.)


1.


"彛兀曰東門有食(이올왈동문유식) 其名曰醫(기명왈의) 口含百草(구함백초) 肌肉馨香(기육형향) 西門有食(서문유식) 其名曰巫(기명왈무) 求媚百神(구미백신) 日沐齋潔(일목재결) 請爲擇肉於此二者(청위택육어차이자)"


이올은 이렇게 말하였다.


"동문(東門)에 먹을 것이 있는데, 이름은 의원(醫員)입니다. 그는 입에다 온갖 풀을 머금어서 살과 고기가 향기롭습니다. 서문에도 먹을 것이 있는데, 이름은 무당입니다. 그는 온갖 귀신에게 아첨을 부리느라고 날마다 목욕재계하기 때문에 고기가 깨끗합니다. 이 두 가지 가운데 골라서 잡수시지요."


그러자 호랑이가 말한다.


"虎奮髥作色曰(호분염작색왈) 醫者疑也(의자의야) 以其所疑而試諸人(이기소의이시저인) 歲所殺常數萬(세소살상수만) 巫者誣也(무자무야) 誣神以惑民(무신이혹민) 歲所殺常數萬(세소살상수만) 중노입골(衆怒入骨) 화위금잠(化爲金蠶) 毒不可食(독불가식)"


이에 호랑이가 수염을 날리고 얼굴빛을 달리하며 말하기를


"의(醫)는 의(疑)다. 자기도 의심스러운 처방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시험해서,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 만이나 된다. 무(巫)는 무(誣)다. 귀신을 속이고 인민들을 미혹시켜, 해마다 남의 목숨을 끊은 것이 몇 만이나 된다. 그래서 뭇사람들의 노여움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금잠(金蠶- 독벌레)으로 화하였으니, 독이 있어서 먹을 수가 없다."


참 연암이 살았을 당시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특히 우리의 상황에서 무당 이야기는 참 새롭다.


2.


북곽이 여자를 탐하다가 그 여자의 아들들에게 들켜 도망가다가 똥구덩이에 빠져 겨우 나오니 호랑이가 떡 버티고 있다. 이에 살기 위해 온갖 말로 호랑이를 칭송한다.


그러자 호랑이가 이렇게 비꼰다.


虎叱曰(호질왈) "毋近前(무근전) 曩也(낭야) 吾聞之(오문지) 儒者諛也(유자유야) 果然(과연)"


호랑이가 꾸짖으며 말하기를


"앞으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지난번에 내가 들으니 '유(儒)는 유(諛)다'고 하던데, 과연 그렇구나.”


똥 냄새가 나니 가까이 오지 말라는 이야기고 유학자는 모두 아첨(諛) 꾼이라고 비꼰다.


그러면서 이렇게 쏘아붙인다.


"汝平居集天下之惡名(여평거집천하지악명) 妄加諸我(망가저아) 今也急而面諛(금야급이면유) 將誰信之耶(장수신지야)"


"네가 평소에 천하 나쁜 이름을 모두 모아서 망령되이 내게 덧붙이더니 이제 낯간지럽게 아첨하는 구나. 그 말을 누가 곧이듣겠느냐?"


그러면서 호랑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計虎之食馬牛(계호지식마우) 不若人之食馬牛之多也(불약인지식마우지다야) 計虎之食人(계호지식인) 不若人之相食之多也(불약인지상식지다야)


"호랑이가 말이나 소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말이나 소 먹는 것만큼 많지는 못할 것이며, 호랑이가 사람 먹는 것을 헤아려도 사람이 저희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만큼 많지는 못할 것이다."


연암 선생의 말이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 뼈 아프다. 호랑이 날, 호랑이를 생각하고 더불어 '호질'을 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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