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 (6)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이 나라 집권 세력의 어눌함과 몰상식, 사적 욕망에 충실한 태도를 보면서 내가 사는 나라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이 매일 심각한 상처를 입고 있다.
이런 사정과 무관하게 더위는 절정이다. 그래서 더 더운지도 모른다. 미국은 이자율을 맥시멈으로 올렸고 우리도 곧 올릴 것이다. 코로나로 풀린 돈이 물가상승의 요인으로 지목되었으니 각국은 이러한 출구전략을 쓸 것이다. 정책으로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대중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방법이 바로 이자율 정책이다.
모든 일이 이렇게 진행되면 분명 다가올 겨울은 매우 음산하고 무거워질 것이다.
생명에 대한 예의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는지는 몰라도 우리 집 에어컨 실외기 밑에 있는 비둘기 알의 부화를 내심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부터 안 들리던 이상한 소리가 들려 새벽에 보니 알 하나가 부화를 했다. 비둘기는 조류지만 젖이 나는 새(바위 비둘기만 그렇다.)다. 하지만 우리 집에 있는 비둘기는 보통의 산 비둘기라 어미의 먹이에 의존할 것이다. 새벽에 마침 어미는 없다.
생각해 보니 생명에 대한 예의라고 치는 편이 좋겠다. 빨리 날아가기를 빈다.
제왕학으로서 《도덕경》을 보고 있으면 사서삼경처럼 확실한 예시와 지침을 주지 않아 가끔 제왕학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은유의 힘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지나친 은유는 오히려 방향이 둔중할 수 있다.
《도덕경》 제9 장 持而盈之, 不如其已.(지이영지, 불여기이) 채우는 것을 유지하는 것(즉 넘치는 것)은 멈추는 것 만 못하다.
무엇이든 넘치는 것은 모자란 만 못하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내 경험으로 넘치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국가 권력을 독점한 고대의 왕이나 지금의 권력자나 그 권력의 넘침을 멈추고 과연 모자람에 만족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그런데 노자께서는 9장 마지막에 이런 말을 첨언한다. 功遂身退, 天之道.(공수신퇴, 천지도) 공이 이루어지면 물러나라. 이것이 하늘의 도다.
그런다고 물러날 사람은 없다. 아마도 코웃음 칠 이야기다.
우리 집 비둘기는 알을 낳아 부화했으니 날아갈 것이고, 더위도 때 되면 물러 날 것이며, 코로나로 풀린 돈은 다시 국가의 금고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것은 어눌함과 몰상식, 사적 욕망에 충실한 이 나라 권력층인데……
제9장의 이야기는 제2장의 ‘功成而不居也’, 즉, 공이 이루어지면(그곳, 또는 그 위치에)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는 말과도 비슷하고 제34장의 ‘功成不名有’, 공이 이루어지면 그 이름(명예)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와도 그 뜻이 통한다. 마지막으로 제77장의 ‘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즉, 앞의 모든 말을 모두 망라한 성인은 (공을) 이루어도 가지지 않고, 거기에 머무르지도 않는다.로 정리한다.
결국 노자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공을 이루면 거기서 뽕을 뽑으려 한다는 것과 절대로 물러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마침내 넘칠 때까지 기다리고, 드디어 흘러넘쳐도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2600년 전(정확하지는 않지만)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을 어찌 몇 마디 경구로 멈출 수 있겠는가!
더위와 곤궁함은 견디거나 참으면 언젠가는 변화가 있다. 또 모든 생명체도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거의 순환한다. 오직 인간의 욕망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집착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되어 우리 삶의 안정을 해치고 마침내는 우리를 破毁하기에 이른다. 지금 이 나라 정치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여름, 태풍이 올라 와 이 모든 것을 평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참 헛된 희망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