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 으로부터......

by 김준식


1. 文禄・慶長の役(분로꾸 게이조 노 에끼)


일본에서 임진란을 부르는 공식 용어다. 풀이하자면 문록(일본 고요 세이 천황) 시대와 경장(고요 세이 천황과 고미즈오 천황 연간) 시대 있었던 역(에끼)이라는 이야기인데 문제는 이 役(싸움)이라는 말이다.


7년 동안 한반도 전역을 유린하고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 일방적인 침략전쟁을 일본은 이렇게 그저 ‘싸움’ 정도로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치 수도에서 떨어진 지방에서 일어난 난리에 중앙 군대를 투입하여 평정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괘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앞잡이 노릇을 하다가 우리나라 군대에서 육군 소장까지 지낸 이형석(일본 육군 소령, 대한민국 육군 소장)이 쓴 『壬辰戰亂史』 에는 당시 조선의 상황을 "붕당 정치와 기강문란, 사회제도의 폐해와 도의관의 타락, 조신의 무능과 실천력의 미약성, 輕武사상과 안일한 姑息性, 사대사상과 타력의존성, 국방정책의 빈곤" 때문에 일본의 침략은 거의 당연한 수순쯤으로 이야기한다.


사실 그러하기는 했다. 전쟁은 권력자와 가진 자들에게는 있을 수 있는 일이 될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민중들에게는 절대로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임진란 역시 절대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전쟁이 이 땅에서 일어났고 그 참혹함 속에서 우리는 위대한 이순신과 만나게 된다.


2. 이순신


영화 속에서 이순신(박해일 분)은 거의 말이 없다. 묵묵하게 듣고 또 듣는다. 심지어 발포 명령을 내리는 순간까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이전의 이순신과는 다른 모습이다. 시간 순서대로 하면 이 영화보다 한 참 뒤(한산대첩 1592, 명량 대첩 1597)인 명량 대첩을 묘사한 ‘명량’에서 이순신은 강력한 태도로 ‘생즉필사, 사즉필생’을 외치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어쩌면 이번 영화의 이순신이 실제의 모습과 더 가깝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배우 박해일은 그런 이순신을 어느 정도는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육지 전쟁의 변수는 거의 계산이 가능하다. 예측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거의 감안해서 전투가 치러진다. 그래서 병력이 많거나 무기가 우세하면 거의 백전 백승이다. 물론 약간의 예외는 있다. 군대의 사기나 상황의 절박함 등이 변수로 작용하여 의외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해전은 경우가 완전히 다르다. 일단 물 위에서 움직이는 배를 타고 전투를 치러야 한다. 유동적인 두 개의 변수는 전투의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명량에서는 해류가 전투의 일등공신이었다. 물론 그것을 읽고 이용한 이순신의 뛰어남은 당연하다.


한산 대첩에서 변수는 위 두 개의 요소(즉 바다와 배) 외에 심리적 요인이 더해진다. 서로를 읽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상황을 영화는 매우 긴박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그런 상황에서 조용한 이순신은 감독의 탁월한 해석으로 보인다.


3. 학익진


진법은 전쟁에서 승전을 위해 무기와 사람의 배치와 용병을 다루는 군사적 전략 전술이다. 학익진은 사실 이순신의 순수 발명이 아니다. 이미 전쟁으로 200년 세월을 보낸 일본이 육지와 해전 모두에서 사용했던 진법이다. 영화에서도 등장하는 일본 수군의 ‘첨자진’은 이 학익진을 깨는 효율적인 진법이다.


하지만 이순신은 임진란 개전으로 파악한 일본 함선의 특성과 화포의 사정거리와 위력을 계산하여 학익진을 펼쳐 일본군을 궤멸시켰다.


일본의 함선 안택선은 속도 위주의 배로서 유선형이다. 즉 배 바닥이 뾰족하다. 속도는 잘 내지만 단점은 선회 기동이 어렵다.(크게 돌아야 한다.)


또 하나는 배 옆면에 화포를 장착하기 어렵다.(유선형이라 무게 배분이 어렵다.) 그래서 근접하여 배를 옮겨 타고 백병전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일본의 해전 전술이었다.


반면 우리의 판옥선은 배 바닥이 편평하다. 즉 선회 기동이 비교적 용이하다.(영화처럼 극단적인 선회 기동은 그저 영화일 뿐이다.) 그리고 무게 배분이 쉬워 배 옆면에 화포를 실을 수가 있다.


이 모든 것을 모두 계산한 전략이 이순신의 학익진이다. 왜장 와끼자까(변요한 분)의 패배는 예견된 일이었다. 와끼자까의 실수는 이순신의 탁월한 작전 지휘 능력과 일사불란한 작전 수행능력(원균 제외)을 계산에 넣지 못했다. 이순신 휘하의 조선 수군을 용인 전투의 조선 육군인 줄 착각한 와끼자까!


4. 전쟁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어떤 명분으로도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전쟁은 인간의 역사에서 항상 있어왔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가고 있고 세계 곳곳의 알 수 없는 전장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전쟁에 내 몰린 사람들이 죽고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 민족이 한반도에서 치른 전쟁은 5000년 역사 동안 1000회에 가깝다고 한다. 근대에 가장 참혹한 6.25를 경험했고 그 사이사이 남북 분쟁으로 많은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아직도 우리는 휴전 중이다.


전쟁을 막는 것은 압도적인 무력이 아니라 압도적인 평화에 대한 의지다. 6.25 이후 이 나라에 전쟁 가능성은 항상 있어왔다. 특히 전쟁을 좋아하는 우리 주위의 열강들이 항상 전쟁의 빌미를 제공한다. 영화 내내 전쟁으로 무참히 죽어나가는 우리와 일본의 민초들을 보며 무엇이 그들의 생명보다 중요한가를 생각해 보았다.


이순신은 말한다. 임진란을 義와 不義의 싸움이라고! 아마도 이순신은 전쟁 자체야 말로 불의의 핵심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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