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문화센터 강의, '프라도 미술관 그림 이야기' 마지막 날이다. 10주 동안 토요일 오전을 헌납했더니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주말 오전의 느긋함을 빼앗는 것은 여러 면에서 부정적이다.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그림 이야기의 대미는 '고야'의 그림이다.
'고야'가 말년에 귀머거리로 지내며 그린 검은 그림에서 2022년 대한민국의 악마적, 퇴행적 사회 분위기를 느낀다. 동시에 고야의 빼어난 처세술에서 최근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모 경찰 간부의 삶이 오버랩된다. 하기야 우리의 경찰 간부는 고야와는 비교가 어렵다. 우리 나라의 경찰은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안녕과 출세를 위해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고 스스로는 榮達을 누리며 살았다. 고야는 자신의 행위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으니 고야에게 조금 미안한 이야기다.(피해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고야는 스페인 출신의 화가다. 그는 벨라스케스, 무리요와 함께 스페인이 자랑하는 3대 화가에 속한다. 고야는 평민 출신이다. 1746년 스페인 동북부 아라곤 지방의 푸엔데토도스 라는 시골마을에서 도금을 하는 장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야는 어릴 적부터 많은 재능을 보였고, 1760년 14살부터는 사라고사의 종교화가인 호세 루산의 도제로 들어가 그림을 배웠다.
고야는 82세로 죽을 때까지 다양한 삶의 파노라마를 보여주지만 인생 전체를 통해 크게 실패한 경험도 없을 만큼 삶을 잘 운영(상황에 맞게 혹은 권력에 적응하며)했다. 그는 1773년 즉 27세 되던 해 호세파 바예우와 결혼을 하고, 당시 왕립 아카데미의 회원이었던 바예우의 오빠의 도움으로 엘파르도 궁전의 테피스트리의 밑그림을 그려 왕가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성 프란시스코 성당의 제단화를 그려 실력을 인정을 받고, 마침내 고야는 1780년 마드리드의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궁정화가로 활동했다.
그는 일생 동안 인물을 주로 그렸는데, 정적인 초상화에서 말년에는 다양한 인물화로 전환하였다. 1800년 《카를로스 4세의 가족》에서는 당시 궁정 사회의 인습과 무기력, 허명(虛名)과 퇴폐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유명한 《옷을 입은 마야》《옷을 벗은 마야》(1800∼1805)에서도 에스파냐의 전통적 여성이 잠자는 비너스라는 고전적 주제에서 벗어나 강한 리얼리티로 표현되어 있다. 위험하고 관능적인 여성 표현 등 고야의 인간관은 차차 악마적 분위기에 싸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경향에서 일대 전환한 동기는 청각을 잃을 정도의 중병을 앓은 체험과 나폴레옹 군의 에스파냐 침입으로 일어난 민족의식이었다.(하지만 이 민족의식 조차도 따지고 보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상당히 질 낮은 민족의식이었다.)
말년에 고야는 완전히 귀머거리가 되어 스스로의 집을 Quinta del Sordo(귀머거리의 집)으로 부르며 검은색이 주조를 이루는 검은 그림을 그리게 된다. 미술 작품에서의 흑백 톤은 깊은 느낌을 쉽게 전달해주고 내면의 상태를 고스란히 전해주는 효과를 갖고 있다. 고야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작품 전체를 검게 표현함으로써, 절제되고 깊은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는 흑백 사진, 흑백 영화가 컬러 화면에 비해 장중함을 주는 것과 동일하게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그 속에서 노년기의 고야가 겪었던 내면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이 검은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은 인간의 악마적 퇴폐적 심리를 표현하고 있는데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나에게 이 그림들이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몹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