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하루 전날

by 김준식


광복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날을 하루 앞두고 올해도 태극기를 달아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합니다.


하루 전인데 이미 아파트 베란다에 태극기 몇 개가 펄럭입니다. 공공 기관마다 대형 태극기를 달아 놓았고 언론에서는 광복 77주년 관련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해마다 뭔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8월 15일은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날입니다. 주민등록 상 제 생일이기도 합니다.


매년 태극기를 달지 못하는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독립군 활동으로 돌아가신 저의 조부의 삶을 완전히 신원伸寃해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이미 손을 놓은 지 오래여서 개인적인 노력을 다 하고 있지만 여러 난관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제 삶의 8월 15일을 돌이켜 보면 국민학교 땐 광복절에 태극기를 그려 손에 들고 광복절 노래를 합창하며 무슨 얘긴지 모르는 선생님의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청년 시절에 역사를 공부하며 해방이 자주적 노력의 결과로 얻은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방은 남한을 지배하던 권력이 일제에서 미군정으로 바뀐 것이고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은 그 지도층이 일제 강점기 지도층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제의 주구들은 해방된 나라에서 친미로 교묘하게 얼굴을 바꾸고 입법, 사법, 행정, 군 등 이 땅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였고 오히려 식민지 시대보다 착취의 구조는 더욱 교묘하고 강력해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 권력의 영구 유지를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온갖 선전매체를 동원해 민중의 각성을 막았고 여전히 막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민중들은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모순된 구조를 인식하고 변화를 위한 투쟁이 진정한 해방으로 가는 길임을 알았지만 내가 쓸 수 있는 무기가 없다는 것에 깊은 절망을 느꼈고 세월이 갈수록 절망은 깊어집니다.


공교롭게도 1948년 정부 수립도 이 날입니다. 매년 이 날만 돌아오면 정부 수립이 더 중요하다고 외치는 자들을 봅니다. 그들, 친일 친미 매국 세력은 이 땅에서 자본과 권력을 장악하여 우리의 민족적 정통성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에 의하면 1948년 세워진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정부라고 되어있지만 1948년 수립된 정부의 핵심세력은 여전히 친일에서 친미로 얼굴을 바꾼 반민족 반 민중 세력들이었습니다. 민족적 정의는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몇 년 전 개봉된 독립운동 영화인 ‘암살’과 ‘봉오동 전투’를 보면서 주인공보다 이름도 없이 죽어간 독립군들에게 더 마음이 갔습니다. 할아버지 때문이겠지요. 영화야 주인공이 있으니 당연히 그들에게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지만 역사의 주인공은 영화처럼 정해진 것도,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투 중에 이름도 없이 죽어간 그들과 그리고 그 험한 역경을 견디고 살아 남아 해방된 땅에 아무런 환영도 보상도 없이 돌아와 오히려 빨갱이로 몰려 억울함과 분노 속에 죽어간 이들을 생각하면 오늘의 해방 77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과연 무엇인지 깊이깊이 생각해 봅니다.


저는 올해도 태극기를 달지 않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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