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화(馴化, Domestication)의 혼선
새벽 산책길, 금호지를 가득 덮고 있던 마름을 누군가가 걷어 낸 흔적이 뚜렷하다. 여름 내내 마름이 거의 연못의 대부분을 덮고 있어 보기에 불편할 정도였다. 지난해 진주환경운동연합에서 걷어내는 일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은 기억이 났다. 어쨌거나 마름으로 덮여 있는 호수보다는 수면이 보이는 호수가 좋다. 마름 열매는 밤과 맛이 비슷하여 ‘물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재배하지는 않는다. 만약 재배되었다면 현재처럼 번성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마름 열매의 모양에서 마름모가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산책 중에 개와 함께 산책 나온 사람들과 만난다. 목줄에 묶인 개는 주인을 따라 길을 걷는다. 개는 네발로 걷기 때문에 두발로 걷는 사람보다 더 빨리 발을 움직여야 하고 대부분 인간보다 덩치가 작아 더 빨리 호흡해야 하므로 숨을 헐떡인다. 그리고 온몸에 털이 덮여 있고 또 땀이 나지 않아 입으로 모든 온도를 조절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개의 입장에서는 극한의 상황에서 걷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이 새벽 주인을 따라 나온 개는 행복한 개가 틀림없다.
약 3만 년 전쯤 가축화되었다고 알려진 개를 이제는 반려(伴侶, Companion) 동물로 부른다. 본래 개는 말이나 소, 당나귀와 같은 노동력을 위한 가축은 아니었다. 호신이나 위험의 고지(호신), 또는 양치기에 필요에 의해 가축화된 개는 인간과 더 가깝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애완(愛玩, Pet)의 지위를 획득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반려(伴侶, Companion)의 지위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물론 고양이도 반려라는 말을 붙이는 가축이기는 하다.
사실 Companion의 어원을 따져보면 놀랍게도 ‘빵’이라는 라틴어 ‘panis’가 함께라는 뜻의 com과 합쳐진 단어다. 즉 빵을 같이 나누는 사이가 Companion이다. 빵은 생존의 수단을 의미함과 동시에 정서와 감정을 공유한다는 의미가 잠재된 용어다. 서로에게 생존과 정서의 공유가 생겼을 때 반려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 산책 길에 보는 개들은 그 주인과 진정 반려 관계에 있는지 개와 주인의 걷는 모습을 보며 유추해 본다.
산책길에 만나는 사람 중에는 아는 얼굴이 가끔씩 있다. 가벼운 인사를 하고 간혹 오래 보지 못하다가 만나면 안부를 묻기도 한다. 딱 그 정도의 관계가 유지된다. 대부분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관계가 유지되기에는 그 어떤 동기가 필요한데 아무도 그 동기를 만들지 않는다.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들 중 산책 도중에 만나서 알게 된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미리 관계가 형성된 사람을 산책에서 만나는 것이다. 산책 중에 만나서 서로에게 안부를 묻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외부 집단에 대하여 매우 공격적 성향이 강하다. 지구상 도처에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이 그 대표적 증거다. 호모 사피엔스인 나 역시 공격적인 성향이 있다.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기가 필요하다. 가장 큰 동기는 배타성이다. 배타성의 근원은 먹거리다. 즉 생존의 필수요건인 먹거리를 나누어 먹을 수 있는가 또는 절대로 나눌 수 없는가가 배타성의 기초가 된다. 가축은 노동력을 얻기 위해 먹거리를 나누지만 이미 개와 고양이 등(반려의 위치에 있는)은 별다른 조건 없이 먹거리를 나눈다. 가끔 호모 사피엔스는 자신의 형제, 부모와도 먹거리를 나누지 않을 때가 있다.
호수 위에 마름은 재배되지 않기 때문에 끈질기게 번성하여 걷어 내야 할 지경에 이르렀고,
지극히 배타적이며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들을 조정하여 애완에서 반려의 지위까지 획득한 Canis lupus familiaris(개의 학명)를 보며 순화의 혼선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