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중학교 철학수업(61)

by 김준식

변증의 산맥을 오르며 노자와 불교에 이어 스콜라 철학에 이르렀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다. 천 길 낭떠러지가 곳곳에 있지만 먼저 거쳐간 사람들이 놓아둔 구름다리와 밧줄을 잡고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아이들이 참 힘들겠다. 어제 개학했는데.....


3. 스콜라 철학과 변증법


1) 유명론과 실제론


가. 보편, 보편자


내 앞에 컵이 여러 개 놓여있다.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물을 담는 용량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그것은 컵이라는 공통된 특성을 가진다. ‘컵’이라는 공통된 특성(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특정 사물을 ‘컵’이라고 부를 수 있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신 사임당의 공통점은 모두 우리나라 화폐에 그려진 인물들인데 좀 더 분명한 공통점은 이들 모두 ‘사람’ 혹은 ‘인간’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어떤 사물들에 공유되는 특성들을 ‘보편(普遍, universal)’ 혹은 ‘보편자(普遍者, the universals)’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컵’이나 ‘인간’ 또는 ‘사람’이 바로 ‘보편’, 혹은 ‘보편자’이다. 여기에 상대하여 각각의 컵이나 사람들은 ‘개별자’라고 부른다. 그러면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각각의 ‘개별자’인 컵 외에 독립적으로 ‘컵’이라는 ‘보편’이, 사람이라는 ‘보편’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또는 존재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에 마주하게 된다.


나. 보편 논쟁


보편 논쟁은 바로 위의 질문, 즉 ‘보편’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혹은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서양의 11세기에서 12세기에 걸쳐 나타난 이 철학적인 논쟁은 앞서 예로 든 ‘컵’이나 ‘사람’의 ‘보편’이 실재하느냐 실재하지 않느냐의 문제로부터 출발하여 ‘보편자’와 ‘개별자’의 관계가 어떠한가’ 등을 둘러싸고 벌어진 스콜라 철학의 오래된 논쟁이었다. 보편 논쟁에서 제기되는 ‘보편’의 문제는 플라톤의 ‘이데아론’(보충학습 자료)을 비판 수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재해석에도 포함되어 있으며, 다른 관점으로 본다면 중세적 ‘관념론’과 ‘유물론’ 논쟁으로도 볼 수도 있다.


다. 실재론(實在論, Philosophical realism, Metaphysical realism)


보편의 실재성에 관한 물음을 '보에티우스'[1]가 라틴어로 번역한 신플라톤주의자 '포르피리오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 입문’[2]을 통해 초기 스콜라철학에 도입되었다. 실재론의 핵심은 어떤 사물들에 공유되는 특성들을 ‘보편(普遍, universal)’ 혹은 ‘보편자(普遍者, the universals)’가 실재한다는 입장이다. 반대의 입장을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이라 부른다.


보편 논쟁에서 '보편자'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보편자’는 실재한다. 2) ‘보편자’는 개별적인 사물들보다는 상위의 존재이다. 다시 말해 ‘보편자’는 ‘개별자’들 보다 그 실재성에 있어서 더 높은 등급을 갖는다. 3) 보편 개념은 개별적 '사물들에 앞서(라틴어 ante rem – 영어 prior in reality or existence to particulars, © 2022 Merriam-Webster, Incorporated)' 존재한다. [3]


‘보편자’가 개별적인 사물, 즉 개별자에 선행하여 객관적으로 실재한다는 입장은 플라톤이나 안셀무스[4]에서 발견된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이데아(Idea)[5]는 육안(肉眼 – 우리에게 있는 감각기관인 눈)이 아니라 영혼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이성(理性)만이 파악할 수 있는 영원불변하고 단일한 세계를 이루어, 끊임없이 변천하는 잡다한 감각 세계의 사물과는 구별된다.


따라서 이데아는 모든 것들의 원천이며 모든 것들은 이것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원형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고, 존재하는 것들은 이데아의 세계를 모방하여 유사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데아를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니 이데아가 인간 내에 있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이데아는 인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이성으로 희미하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데아는 인간의 실존과는 무관하다. 플라톤은 모든 사물들이 원래 이데아의 일부를 가진 것으로 본다.(분유[6])


[1] 이름이 매우 길다. 아니키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세베리누스 보이티우스(라틴어: Anicius Manlius Torquatus Sererinus Boethius, 480년~524년)는 로마의 저술가·철학자이다.


[2] 포르피리오스(Porphyry of Tyre, c.234 – c.305 AD) 3세기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인 자신의 스승 플로티노스의 사상을 집대성한 논문집인 《엔네아데스, Enneads》를 출판하였다. 그의 저서 《범주론 입문, Introduction to Aristotle's Categories (Isagoge)》는 논리학과 철학에 관한 입문서로서, 이 책의 라틴어 번역본은 중세 논리학 교과서의 표준이 되었다. 《신탁에서 유래한 철학, Philosophy from Oracles》과 《기독교에 대한 반론, Against the Christians》를 저술한 탓으로 많은 초기 기독교인들과 논쟁을 벌여야 했다.


[3]《이해를 추구하는 믿음 – 안셀무스의 신학적 체계와 연관된 신 존재 증명》 카를 바르트 지음, 김장생 옮김, 한국문화사. 2000. 157쪽~160쪽.


[4] 안셀무스 칸투아리엔시스(라틴어: Anselmus Cantuariensis), 즉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는 이탈리아 출신 기독교 신학자이자 철학자로, 1093년~1109년 영국의 캔터베리 대주교를 지냈다. 스콜라 철학의 창시자로서, 신 존재를 대상으로 한 존재론적 신의 존재 논증과 십자군에 공개로 반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5] 원래는 ‘보이는 것’ 또는 ‘모양’, ‘모습’, 그리고 물건의 형식이나 종류를 의미하기도 했다.



[6] 플라톤의 분유(participation, Methexis) 이론: 사물들이 이데아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는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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