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학기 시작하고 처음 맞이하는 철학적 글쓰기 시간이다.(목요일에는 출장이 있어 화요일 시간과 교체하는 바람에 오늘 아침에 수업 후기를 씀)
이미 배운 보편(universal)의 개념을 좀 더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하다가 아이들의 삶 속에서 ‘보편’을 역순으로 찾아낼 수 있도록 질문을 만들어 보았다.
스스로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개념들을 찾아내서 그것들의 기준을 제시하며, 그 기준이 타당한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다. 그런 다음 기준을 포함하는 상징 단어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보편’으로 상정하고, 그 ‘보편’(공통점)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실재하는가? 또는 이름만 있는 것인가? 를 파악하게 하고 그 과정을 써 보는 시간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몇 아이들의 답은 놀라웠다. 아이들이 찾아낸 자신의 삶에 있는 공통점(키워드 - ‘보편’이라고 부르기로 한)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나 아렌트(라고 불리는 학생)
찾아낸 ‘보편’ 1. 행복(점심 급식, 하교, 취침, 저녁 시간, 도착)
찾아낸 ‘보편’ 2. 심리전(준비, 양치, 샤워, 내일, 모든 준비)
쥘 들레즈(라고 불리는 학생)
찾아낸 ‘보편’ 1. 치장(씻기, 머리, 양치)
찾아낸 ‘보편’ 2. 생존(식사, 잠, 기상, 등교)
롤랑 바르트(라고 불리는 학생)
찾아낸 ‘보편’ 1. 휴식(폰, 이야기, 그림 그리기)
찾아낸 ‘보편’ 2. 움직임(샤워, 등교, 공부, 잠, 집)
노엄 촘스키(라고 불리는 학생)
찾아낸 ‘보편’ 1. 싫다(등교, 집, 잠)
찾아낸 ‘보편’ 1. 좋다(밥, 이불, 학교, 야식)
거의 동일한 장소에서 비슷한 사태를 겪고 있음에도 아이들은 제 각각 다른 종류의 ‘보편’을 찾아낸다. 3번 문제는 시간이 부족하여 다음 글쓰기 시간으로 연기했다.
늘 이야기하지만 아이들에게 충분히 이야기하고 충분한 여유를 주면 놀랍게도 그들은 거의 대부분의 논리를 이해하고 조금씩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개학 후 2주가 지났으니 두 시간 만에 아이들은 서양 중세 200년간 치열했던 보편 논쟁을, 자신들의 삶의 통해 희미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선생으로서 교사로서 감동이 있다면 바로 이런 감동이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잡담하는 아이들, 쓸데없는 이야기만 잔뜩 써 놓은 아이들, 자는 것인지 듣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이들이 혼재되어 있지만 그 아이들에게 나는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자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