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
유명론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개별자’이고, ‘보편자’는 이름만 있을 뿐(유명唯名) 실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앞에서 예로 든 ‘컵’의 경우 각 ‘개별자’인 ‘컵’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각 ‘개별자’들의 공통된 특성인 ‘보편자’인 컵’은 실재하지 않고 다만 이름으로만 인식된다는 것이다. 유명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로스켈리누스[1]
로스켈리누스에 의하면 존재하는 것은 단순한 ‘개별자’뿐이다. ‘보편자’란 인간에 의해서 사유된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2]또한 ‘보편자’는 개개의 사물들 뒤에 있는 이름일 뿐이며 ‘개별자’의 공통적인 특징을 집합시키고 있을 뿐인 것이다. 예를 들면 ‘컵’이라는 ‘보편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각의 ‘개별자’인 ‘컵’이 존재할 뿐이고, 각 각의 사람들이 ‘개별자’로 존재할 뿐, ‘인류’라는 ‘보편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유명론은 ‘보편자’의 실재성(實在性)을 부정함으로써 실재하지 않는 ‘교회의 위계질서’나 ‘교리’보다는 실재하는 각 ‘개별자’인 인간에게 더 가치를 두게 된다. 즉 ‘개별자’인 기독교 신자들이 ‘보편자’인 교회(신앙적 집합체로서의 교회)보다 기독교적 신에 더욱 가깝다는 말이 된다. 그는 이 논쟁을 교회의 삼위일체설에 적용하게 된다. 그는 유명론의 입장에서 삼위일체설을 부정한다. 즉, 성부와 성자와 성신은 하나(一神)가 아니라 셋으로 분리되어 있는 실체로서 3신이라고 주장하게 된다. 결국 이 이론으로 하여 로스켈리누스는 이단으로 낙인 찍혔고 교회로부터 이론의 번복을 강요 받게 된다. 마침내 1092년 프랑스의 랭스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그는 이 이론을 철회하게 된다.[3]
2) 아벨라르
로스켈리누스의 제자였던 아벨라르[4]는 처음에는 실재론자인 기욤[5]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기욤의 견해에 맞서기 시작했고 로스켈리누스의 영향으로 유명론자로 돌아선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보편자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사물’에 부여한 것이 아니라 ‘낱말’에 부여한 술어(述語)[6]라는 것이다. 즉 보편 개념은 인간의 오성이 구체적인 사물들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각각의 유사한 속성들을 추려낸, 즉 추상한 결과물이다.
아벨라르는 극단적인 유명론과 실재론을 극복하고 생각(사고)의 경험적 측면과 추상적 측면을 모두 중시하여 실재하는 것인지 또는 이름만 있는 것인지를 두고 다툰 ‘보편 논쟁’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특별히 그의 이런 입장을 개념론[7]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아벨라르도 삼위일체설에 대하여 비판적 해석을 내 놓자 1121년 수아송 공의회에서 벌을 받고 수도원으로 보내진다. 4년 뒤 복권되어 활동하다가 1141년 다시 상스 공의회에서 이 문제로 벌을 받아 클뤼니 수도원으로 보내진 뒤 거기서 죽게 된다.[8]
3) 윌리엄 오브 오컴[9]
오컴에 의하면 ‘보편’이란 우리의 사유 속에서 구체적 사물 대신에 나타나는 ‘개념’이나 ‘용어’ 그리고 ‘기호’라고 보았다. 만약 ‘보편’이 실재한다면 신의 천지 창조에 앞서 신의 마음속에 이미 ‘보편’ 개념으로 존재했을 것이고, 그것은 곧 신의 의지를 속박하는 결과가 되어 신의 자유로운 창조와 모순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오컴의 격률을 흔히 오컴의 면도날(Ockam's Razor)’이라고 부르는데 이 원리는 정작 그의 저작에서는 발견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전체 저작에서 일관되게 주장하는 어떤 원칙을 이렇게 불렀다. ‘오컴의 면도날’을 위대한 러셀[10]은 이렇게 요약한다. 즉, “존재들은 필요 없이 늘어나서는 안된다.”[11]이 말을 좀 더 풀이해보면 '설명은 단순한 것일수록 뛰어나다' 혹은 '불필요한 가정을 개입시키지 마라' 등의 의미가 된다.
이 말은 ‘보편’과 ‘개별’을 철저히 구분함으로서, ‘보편자’의 존재를 부정하여, 유명론의 정립에 공헌하게 된다.
[1]
로스켈리누스(Roscellinus Compendiensis, 1050년경 ~ 1125년경) 프랑스의 스콜라 철학자. 보편 논쟁에 있어서의 유명론을 주장한 최초의 대표자이다.
[2]
안셀무스에 따르면 로스켈리누스에게 있어 ‘보편자’란 그저 ‘발음(breath of the voice)’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서양철학사, 버트란트 러셀 지음, 서상복 옮김, 을유문화사. 2019. 571쪽)
[3]
앞의 책. 571쪽
[4]피에르 아벨라르(Pierre Abélard, 1079년 ~ 1142년) 중세 프랑스를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철학자. 중세 철학사 전체를 지배한 ‘보편 논쟁’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 대표적인 저서로는 Sic et Non(Yes and No, 긍정과 부정. 1121~1122)가 있다.
[5]
샹포의 기욤(Guillaume de Champeaux, 1070년경 ~ 1121년)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신학자. 대표적인 실재론자.
[6]
술어(述語, predicate) 명제(판단)에 있어서 주어에 대해 주장되는(긍정 또는 부정하는) 개념을 말한다.
[7]
개념론(槪念論, Conceptualism) 아벨라르가 보편논쟁에서 주장한 입장으로 ‘보편’은 인간의 인식에 의한 것이며 ‘보편자’라고 불리는 것(즉, 神)은 개념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개념에 관한 논리학적이고 인식론적 이론으로서, 스콜라 철학에서의 실재론과 유명론의 중간에 서는 입장이다.
[8]
앞의 책. 572쪽
[9]
오컴(William of Ockham, 1287년경 ~ 1349년경) 14세기 잉글랜드의 프란치스코회 탁발수도사이자 탁월한 신학자였다. 윌리엄 오컴(William of Ockham)l라는 이른은 오컴 출신의 윌리엄이라는 말인데, 이름에 지역을 붙인 이유는 윌리엄이라는 이름이 매우 흔해서 지역(Ockham, Surrey- 런던 남부의 소도시)을 붙여 구별하고자 했던 것이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Sum of Logic(논리합), 1323이 있다.
[10]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년~1970년) 영국의 수학자, 철학자, 수리논리학자, 역사가, 사회 비평가다. 《수학원리》를 저술하여 수리논리학의 성립에 공헌하였다.
[11]
앞의 책 6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