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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2 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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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식 Sep 14. 2022

닭의 장풀 옆, 유홍초를 보다.

押跖草側垂示留紅草 (압척초측수시유홍초) 닭의 장풀 옆, 유홍초를 보다.


異形各色同處發 (이형각색동처발) 색도 모양도 다르지만 같은 곳에서 피니,

冒蒙誤解徒輩間 (모몽오해도배간) 무리들 사이 오해를 무릅써야 한다네.

順流因緣能當謗*(순류인연능당방) 인연 따라 왔음에 비방은 능히 감당하여,   

半日凋枯至來還 (반일조고지래환) 반나절 만에 말라 본디 자리로 돌아갈 것을.


2022년 9월 14일 점심시간. 점심을 먹고 걷다가 닭의 장풀(양 달개비)과 유홍초가 함께 보이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글을 놓으려고 오래 고민하다 밤이 되어서야 겨우 28자를 맞춘다. 두 풀꽃은 지금이 한 창이다. 그런데 색이 정 반대인 두 풀꽃이 한 장소에 피어있다. 각자 인연에 의해 거기에 피어났겠지만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참 새롭다. 하지만 한 나절 뒤면 스러져버리고 마는 풀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 일을 비춰보니 …… 서로 다른 색을 가진 존재들이 함께 어우러져 지내는 것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늘 의심하는 유일한 종이 아마도 사람인가 싶다. 압척초 무리나 유홍초 무리는 추호도 그런 생각이 없겠지만, 인간인 나는 이 장면에서 분별을 생각하니 글을 쓴 뒤에도 내가 참 안타깝다. 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엔 이런 일이 마치 호흡처럼 생겨나고 사라진다. 그 또한 안타깝다.   



* 孟子 滕文公章句 下 내용 중 ‘진중자(陳仲子)’의 이미지를 용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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