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15)

말(言)의 무게

by 김준식

노자 도덕경 산책 15


말(言)의 무게


젊은 시절 나는, 아무 근거도 없고 든든한 뒷배도 없으면서 늘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의 치기稚氣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절엔 그 힘으로 세상을 살아낸 것 같다. 자신감에 차 있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 낼 수 없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시절, 나에게 배운 제자들을 만나면 그들이 느꼈던 나의 인상은 뭔가 굉장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고 이야기한다. 사실은 속 빈 강정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아 내심 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은 말을 어떻게 할까? 두 종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자신감에 차 있기 때문에 말을 아낀다. 꼭 말로 드러내지 않아도 태도나 표정에서 말 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른 부류는 자신감에 가득 차 아무 말이나 함부로 한다. 무슨 말을 해도 관계없다는 듯 거칠 것 없이 말을 내 지른다. 그런데 이 부류의 자신감 속에는 왠지 타인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약간의 무시가 깔려 있다.


젊은 시절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하니 온 몸에 털이 곤두선다. 시간이 지났으니 회복할 수 없고, 회복할 수 없으니 참 무서운 일이다.


종교적 가르침 속에는 이 ‘말(言)이 가지는 위험을 경계한 내용이 많다.


부처께서는 부처의 경지에 오르고자 하면 10 업을 쌓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10 업을 쌓으려면 10개의 금지 사항을 지켜야 한다고 한다. 그 금지 사항 중에 말(言) 대한 것이 4개나 있다. 즉, ‘망언(거짓말을 하는 것)’, ‘양설(사이를 이간질하는 것)’, ‘악구(험담을 하는 것)’, ‘기어(함부로 말하는 것)’를 행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께서도 도덕경 56장에서 말(言)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知者, 不言. 言者, 不知.(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조금 다른 분위기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비슷한 부분도 보인다.


안다는 것(知)은 무엇인가? 사실 아는 것의 범위를 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누군가 어떤 사실을 분명하게 그리고 깊고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에 가깝다. 이를테면 우리가 안다고 말하는 것은 일정 범위 안에서 아는 것이지 그 본질까지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노자께서는 ‘말하지 않는다’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나라 변방에 작은 시골 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이후 나는 학교에서 말을 적게 한다. 어떨 때는 하루 종일 거의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비록 15명 정도의 교직원이지만 그들에게 내 말은 약간의 무게를 가진다. 특히 의무사항이거나 또는 부정적인 상황일 때 거기에 얻는 내 말(言)은 교직원들에게 무게로 다가갈 것이다. 그런 때를 골라 말을 줄이기보다 처음부터 모든 상황에서 말은 조심하고 삼가려고 한다.


노자께서 도덕경 맨 처음에 이야기한 道可道, 非常道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즉 모든 언어는 특정한 상황을 표현함에 있어 반드시 화자의 인식 작용을 거쳐 나오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표현하기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 즉 화자에 따라 해석과 판단이 모두 다르다. 즉 화자의 상황이나 상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언어는 매우 불완전한 것이 된다.


돌연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그러니 글도 말도 언제나 조심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