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16)

by 김준식

여론 조사를 보며.


여론 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뢰 수준’이라는 표현이 있다. ‘신뢰 수준’(Confidence level, 신뢰도)은 이 용어를 만든 네이만(Jerzy Neyman, 1894–1981) 폴란드의 통계학자. 신뢰구간의 개념을 정의)에 따르면 일종의 방법의 정확도를 말한다. 즉 조사하는 방법이 신뢰할만한 것이라는 의미이지, 발표된 내용이 신뢰할 만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국가 지도자에 대한 여러 가지 여론 조사는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부정적이라는 지금의 지도자에 대한 여론은 여러 면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자주, 진영 논리에 따라 모든 일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진영 논리에 따르면 이 세상에는 완전한 객관은 없다.


어쨌거나 현재 지도자에 대한 여론이 전체적으로 부정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한 가운데 도덕경 17장의 이 말과 관련성을 생각해 본다.


其次, 侮之.(기차 모지) 그다음은(마지막) 업신여기는(깔보는) 것이다.《도덕경 17》 일부


앞선 내용은 이러하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평가 중) 최고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존재 정도만을 아는 정도이고, 다음은 친근하게 생각하며 좋은 평판을 있는 것이고, 그다음은 두려워하는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의 대한민국 지도자는 위 네 가지 경우 중 어디에 있을까?


또,


도덕경 제32장에서


道, 常無名樸.(도, 상무명박) 도는 항상 이름이 없는 통나무다. 《도덕경 32》 일부


道는 이름이 없는데 이름 없음을 통나무에 비유한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통나무는 아무런 기능을 갖지 않는다. 또 통나무는 어떠한 형태도 없다. 다만 나무 그 자체일 뿐이다. 따라서 통나무는 도의 無形性, 혹은 궁극적 潛在性(잠재성)에 닿아있다. 이를테면 도의 무형성은 도의 이름 없음과 상통한다.


32장은 통나무에 기초한 도를 정치권력과 비교하여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름이 없는 것은 기능이 없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그 어느 것에도 종속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이름이란 특정한 역할, 관직, 의무를 나타낸다. 이름이 없는 것은 특정한 업무가 있을 수 없다. 이름 없음은 오히려 거대한 자연에 의한 지배권을 이야기하며 그리하여 (아주 좁게) ‘권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도에 의한 권력은 無爲로서 움직이기 때문에 ‘스스로 그러하다(自然 도덕경에는 自均으로 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다시 제17장의 이야기가 소환된다. 즉, 17장의 이야기처럼 사람들은 오로지 그러한 존재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때(자연스러울 때)가 가장 최상의 권력이라는 뜻이 된다. 오늘날처럼 국가가 적극적으로 행정을 해야 할 때는 두 번째 단계만 되어도 좋겠다.(친근하게 생각하며 좋은 평판을 있는 것)


제32장에는 의미 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도 있다. ‘멈출 때를 아는 것(知止)’ 즉, ‘그침의 완성’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침의 완성’이란 탐욕, 열망, 중독에 빠지는 것을 회피하는 방법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도가적 기술이다. 장자》'응제왕'에 나오는 혼돈의 죽음도 그치지 않아서 생긴 일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