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Gustave Doré(구스타브 도레 1832 ~ 1883)는 현재 독일과 프랑스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Strasbourg(스트라스부르) 출신인데 이 도시 Strasbourg는 독일과 프랑스의 오랜 반목의 역사를 품고 있는 알자스 로렌 지방의 주도로서 독일과 프랑스의 문화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도레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로 인정받았는데 15세 되던 해, 르 주르날 푸르 리르(Le Journal pour rire – 직역하자면 웃음에 대한 신문이란 뜻)에 캐리커쳐를 연재하게 되고 이듬해, 즉 16세 되던 해에는 당시 프랑스에서 어린 나이에 가장 돈을 많이 버는 삽화가가 된다.
Theophile Gautier(테오필 고티에,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는 도레를 가리켜 '천재 소년'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당시 그의 작품은 프랑스를 놀라게 했다. 이러한 명성에 힘 입어 도레는 프랑수아 라블레, 오노레 드 발자크, 존 밀턴, 단테 알리기에리, 조지 바이런 경, 에드거 앨런 포 등 불멸의 문학 작품에 삽화 작업을 담당하게 된다.
L'Énigme(르 에니그마, 수수께끼)라는 이 작품은 도레가 39세 되던 해(1871년)에 그려지는데 당시 프랑스는 1870년 보불전쟁 패배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던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이 그림이 그려진 1871년에는 파리 코뮌(프랑스의 공산주의적 민중혁명)이 발발하여 사람들의 삶이 매우 피폐해져 있던 시기였다.
스핑크스가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맞추지 못하면 목숨을 빼앗는 신화를 모티브로 당시 파리 코뮌의 폭동 때문에 불타고 있는 파리시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보불 전쟁에 패배한 암울한 현실과 정치적 권력다툼에 내 팽개쳐진 민중의 삶을 부서진 대포와 몇 구의 시체들, 그리고 암회색의 모노톤으로 표현하고 있다.
정치이념을 형상화한 스핑크스와 그 이념의 희생양이 될 운명에 처한 민중들의 순결한 정신을 날개 달린 천사(하지만 고통스러운 상황에 있는)로 표현하여 알레고리적 의미를 가지게 한다. 천재적 영감을 가진 도레는 이 그림을 통해 인류 역사 전체를 지배하는 탐욕의 권력이 저지르는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도레 그림의 배경이 되는 보불전쟁은 프랑스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의 전쟁으로서 프랑스는 이 전쟁에서 참패하여 제2제정이 무너졌고 제3공화국이 세워졌다. 승전국인 프로이센은 독일 연방 내 모든 영주 국을 통일하여 독일 제국(제2제국)을 세웠다. 프랑스 제2 제정을 세운 나폴레옹 3세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가 나폴레옹의 의붓딸 오르탕스와 결혼하여 1808년에 태어난 아들이다. 실제는 남이지만 법률적으로는 근친의 결혼으로 태어난 아들이다.
보불전쟁의 패배로 프랑스는, 프랑스의 기층 민중들은 그야말로 최악의 시기를 보낸다. 이 상황을 도레는 이중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정말 지도자의 어리석음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든다.
노자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服文綵, 帶利劍 厭飮食, 財貨有餘. 是謂道竽 道竽, 非道也.(복문채, 대리검 염음식, 재화유여. 시위도우 도우, 비도야)(도덕경 53장)
옷의 문양은 화려하고 허리에 날카로운 칼을 차고 배불리 먹고 마시며 재화는 넘치네. 이를 일러 도우(악기를 이르는 말이나 흥청망청 노는 것을 비유하는 말, 도우는 그러한 무리들)라 하는데 도우는 道가 아니다.
道竽라는 말을 한비자(第二十 解老篇)에서 이렇게 풀이했다. 즉, 竽唱則諸樂皆和 今大姦作 則俗之民唱 俗之民唱 則小盜必和(우창칙제악개화 금대간작 칙속지민창 속지민창 칙소도필화; 竽가 소리를 내면 여러 악기들이 모두 화답한다. 지금 크게 간사한 자가 부르면 세속 사람들이 뒤따라 부르고, 세속 사람들이 뒤따라 부르면 작은 도둑이 반드시 화답한다.)라고 했다. 즉 도우는 나쁜 무리들의 우두머리, 민중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도적의 무리를 말한다.
전쟁을 일으키는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민중의 삶과는 단 1도 관계가 없다. 오직 소수의 세력들에 의해, 소수의 세력들을 위해 일어날 뿐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민중들의 몫이다. 어디 전쟁만 그런가? 政爭도 다르지 않다.
정리되지 않는 정치상황과 이상한 무리들의 준동蠢動으로 민중의 삶이 피폐해지는 것은 2600년 전 중국이나 200년 전 프랑스나 2022년 대한민국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