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산책(18)

이태원 참사를 생각하며

by 김준식

대한민국 변방의 작은 시골 중학교 교장이 나라 걱정을 한다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지만 나름 작은 조직의 리더로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루 종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떻게 해서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축구 경기를 보다가, 누군가에 쫓겨서, 거대한 자연재해로, 그것도 아니면 배가 침몰되어, 또 불길에 휩싸인 것도 아닌 길거리에서 오가는 중에 156명이 압사한다는 것은 인류 역사 이래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싶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빛나는 문화적 진보를 이루어 낸, 그야말로 세계 최강의 문화 민족인 우리가, 길이 100m 도 되지 않는 골목길에서 156명의 꽃 같은 생명을 잃은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노자 도덕경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들이 지도자를 존경하지 않고 (윗사람들이 법을 함부로 어기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법을 어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그 나라는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역으로 만약 사람들이 권력이 있는 사람들, 특히 지도자를 존경할 때에는 세상이 자연스럽게 다스려지고 안정될 것이다.(도덕경 17장 의역)


그 골목길에서 압사의 위험에 직면한 사람들이 실제로 일이 생기기 한 참 전에 신고를 했다는 보도가 쏟아진다. 그런데 경찰은 수수방관했다. 원인은 의외로 간단하다. 직업적 소명의식은 그 사회의 공기다. 윗사람들의 헌신과 명예로운 처신이 정착되면, 그 기운은 마치 공기처럼 흔적 없이 퍼져나가 자연스럽게 아랫사람을 감화시키고 그 감화는 모든 이의 소명의식을 충동한다. 집단의 규모에 관계없이 그것이 자연스러운 리더십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부분이 무너졌거나 무너지고 있었는데 그 결정적 증거가 이번 참사 전의 경찰의 수수방관 태도다.


아마 모든 상황이 반대였다면 경찰은 충실하게, 그리고 선제적으로 소명을 이행하였을 것이고 이번 참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물론 사건이 나고 그 현장에서 신명을 다해 구조를 펼친 경찰과 여러 공무원 그리고 일반인들도 있다. 나의 문제제기는 신고를 받고 즉각 실행에 옮기지 않은 현재의 경찰 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도덕경 이야기는 이어진다.


그러므로 사람들 위에 있고자 하면 반드시 말을 낮추어야 하고, 사람들 앞에 서고자 하면 반드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그러면 비록 지도자가 위에 있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압박을 느끼지 않을 것이고 지도자가 앞서 나아가도 사람들은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도덕경 72장 의역)


대통령의 말,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 그리고 여당의 말들이 이 사태에 대한 반성과 나아가 자신을 돌아보며 하는 말이 아니다. 겸손은커녕 거만하고 위압적이다. 심지어 교묘하게 발뺌하고 뻔뻔하기조차 하다. 내 잘못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단 한 놈도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만만하고 애매한 표현, ‘유감이다’로 퉁친다. 우리말로 “저의 잘못입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런 말을 해야 되는데…… 그들의 말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사정이 이러니 어떻게 사람들이 그들의 말에 무게를 두며, 그들의 말을 신뢰할 것인가! 하여 그들이 우리 위에 있다는 것이 짜증이 나고 나아가 분노하게 된다.


희생자들 중, 사망자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국민들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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