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로 정년퇴직을 하는 친구의 시골집에 다녀오다.
경찰 서장을 끝으로 퇴직하는 나의 오랜 친구(19세에 처음 만났다.)가 며칠 전 노후를 즐길 시골집을 마련했다 하여 가 보니, 위치도 좋고 집도 그럴듯하고, 더구나 마당이 잘 꾸며져 있었다. 둘이서 마당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2015년 개봉된 영화 인턴이 생각났다.
경찰 서장 출신으로 정년을 맞이했지만 아직 우리 친구는 젊다. 은퇴 생활하기에는 아직 에너지가 넘친다. 이 작은 시골집에서 푸성귀나 가꾸고 정원이나 가꾸기에는 아직 사회를 위해 뭔가 더 할 일이 있지 않을까?
나 역시 퇴직을 약 2년 정도 앞둔 지금, 나의 위치를 곰곰이 되짚어 보면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강정 같은 나를 발견하고는,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된다. 막상 퇴직이라는 현실이 내 앞에 왔을 때 나는 과연 그 상황을 어떻게 수용해야 될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면 그저 막막함뿐이다. 개봉 당시에도 영화 인턴을 보며 영화보다는 이런저런 나의 현실 문제가 더 생각나 영화에 온전히 몰입할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잠시 영화 이야기를 해 보자면,
로버트 드니로(벤 휘태커 역)의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그대로 대변하듯 영화에서 그는 마치 물 흐르는 듯 한 절묘한 일상의 연기를 보여준다. 1943년 생이니 우리 나이로 올해 73세(2015년 개봉 당시)의 이 노 배우는 영화인지 다큐인지 모를 만큼 완벽한 휘테커의 삶을 연기한다. 마누라를 여윈 노년의 고독과 혼자 영위하는 삶의 쓸쓸함을 이겨내기 위해 그는 취업을 결심하고 어느 인터넷 쇼핑몰 회사에 인턴(회사나 기관 따위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에 앞서 훈련을 받는 사람)으로 취업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상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여 주인공 역의 앤 해서웨이(줄스 오스틴 역)의 연기도 칭찬할 만 하지만 워낙 드니로의 연기가 뛰어나 영화 내내 여 주인공의 호흡이 빨라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의 만남을 할리우드는 부녀 지간의 애정과 남녀 간의 로맨스를 7:3으로 절묘하게 섞은 뒤 다시 할아버지와 손자의 사랑, 그리고 남자 간의 우정을 양념으로 남 녀 주인공 둘 사이의 관계 구조를 완성했다. 결코 불쾌하거나 또는 도를 넘지 않으려고 무던히 감독은 애를 쓴 흔적이 영화 곳곳에서 감지된다.
여 주인공 부부 문제를 다룬 감독의 시선을 생각해 보자. 부부 사이에 대한 감정은 마치 달궈진 기름처럼 약간의 불순물만 들어가도 격렬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것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남녀가 짝을 이뤄 살기 시작한 이래로 불변의 법칙이다. 특히 그 불순물이 다른 남녀와의 감정의 찌꺼기라면 그 반응의 격렬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이 반응을 겉으로 드러내 놓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선과 사실들이 어지럽게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 결론은 대부분 두 남녀의 분리(이혼, 별거)로 종결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 또한 최대한 무리 없는 결론으로 끌어 가려다 보니 영화적 긴장이 갑자기 늘어져버리고 말았다. 감독은 이 영화를 도덕교과서로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하기야 영화 제목은 인턴이니까?
노년의 삶은 사실 무료한 일상이 무한 반복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새로운 것도 없고 관심도 없는 일상이 단지 그렇게 반복될 터인데 이 노년을 이기는 방법은 끝없이 새롭고 다양한 것에의 관심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나? 벌써 60대 초입에 들어선 나와 내 친구를 보면 벌써 관심의 끈을 반쯤은 놓고 있는 듯 보인다. 드니로 아니 휘테커의 대사 한 마디가 가슴을 찌른다. 그가 인턴을 지원하며 이런 말을 했다.
“내 인생의 구멍을 채우기 위해……"
노년은 이런 구멍이 도처에 널려 있고 거기에 빠지는 날이 어쩌면 죽음에 이르는 길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