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올빼미
1. 흔해 빠진 역모의 시대
조선 시대 逆謀는 거의 유행가 수준이었다. 임란 이후(그 전에도 많았다.) 망가진 국가시스템은 병자호란을 거치며 회복 불능에 빠졌고 그나마 존재하던 미미한 왕권은 일부 세력의 전유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 일부 세력들은 미미한 왕권을 이리저리 주고 받으며 또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민중을 착취하고 반대파들을 피로 숙청하는 반동의 역사가 조선 왕조의 몰락까지 계속되었다.
2. 시대적 배경
인조(즉위 전 능양군)라는 왕은 1623년 서인의 일파였던 김류, 이귀 등이 광해군을 몰아내고 일으킨 반정으로 왕위에 등극한다. 광해군이 왕권 강화의 방법으로 일으킨 계축옥사의 피해자였던 김류 등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세운 왕 ‘인조’는 사실 왕으로서의 위엄이나 정치 외교적 감각이 제로인 상태에서 급작스레 왕이 되었으니 자신을 세운 서인들의 말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반정 공신 중에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최명길도 있었다.(최대감으로 불리는 조성하 분)
서인들이 인조반정을 하면서 내 건 슬로건은 ‘성리학적 질서의 회복’이었다.(광해군이 젊은 계모 인목대비를 폐하고 어린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인 패륜을 반정의 주요 원인으로 삼았다.) 그런 이들이 성리학적 주군이었던 명나라와의 군신관계를 끊고 오랑캐의 나라 청나라와 군신관계를 맺으라는 요구를 수용할 리 만무했다. 왕이 된 인조는 이 억지 명분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을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한다. 인조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의 연기는 우리가 상상해 온 멍청하고 어리석은 그리고 불쌍한 왕을 실제로 보는 착각이 들 만큼 압권이었다.
3. 영화
청에 볼모로 9년이나 잡혀 있다가 돌아온 소현 세자는 어찌해 볼 틈새도 없이 고국에 돌아오자 마자 어이없게 죽고 만다. 소현 세자가 죽음에 이르는 아주 짧은 시공간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거기에 몇 개의 가상의 구조와 극적인 요소를 더해 영화적 긴장을 창조해냈다.
타국에서 이제 막 본국으로 돌아온 소현 세자의 비극적 죽음이 일어난 그 밤 한가운데, 낮에는 거의 소경이었다가 밤이 되면 어느 정도 사물을 분별하는 내의원 의원 천경수(류준열 분)가 있다. 영화 제목의 시퀀스가 여기서 출발한다.
죽음과 어둠은 기이하게도 많은 것이 통한다. 영화적 상상력이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가 묘하게 섞여 있지만 그리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역사(왕조 실록) 속에 기록된 소현 세자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상호군 김육이 지은 소현 세자의 애책문에서 행장을 밝히는 정도)
그래서 영화적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학질은 모기가 옮기는 병이다.(말라리아, 요즘은 여러 가지 치료제가 개발되어 있다.) 9년 타국 생활도 견딘 소현세자가 자기 나라 자기 궁궐에서 어이없게 학질로 죽은 것에 대해 의문이 없을 수 없다. 아버지 인조의 처지와 상황 등을 고려해 볼 때 세자의 죽음에 대한 영화적 해석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구중궁궐 속에 일어나는 암투는 상식이나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 제한 공간에 거주하는 왕은 촘촘한 정치와 권력, 그리고 이권의 거미줄 속에서 매일을 보내야 한다. 명석하지 못한 왕들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음모와 연결이 되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일생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마도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아주 합리적인 믿음이 이 영화의 토양이 되었을 것이다.
2022년 한국 영화 중, 몇 안되는 수작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