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ther (Russian: Мать) Maxim Gorky 어머니. 1906
19세기 러시아는 로마노프 왕조의 연이은 실정으로 민중은 피폐해졌고 왕족과 귀족들만이 부유해져서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남진정책이었던 크림전쟁(1853∼56)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이로써 다른 유럽 여러 나라보다 군사적 후진성이 드러났고 연이은 농민반란에 1861년에는 농노해방을 단행하였다.
농노해방은 러시아의 근대화를 의미했다. 하지만 산업생산에 필요한 근본적인 산업시설의 부재는 농노 해방으로 양산된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운동을 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다. 공장 노동자의 상태는 선진국에 비해 위생시설이 형편없었고, 낡은 기계로 인한 생산량 감소로 임금이 낮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합법적 활동으로 그것을 개선할 길이 막혀 있었으므로 노동운동은 과격화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런 상황에 혹독한 경제공황이 더해졌고 제정 경찰의 탄압은 곳곳에서 민중봉기를 자극하게 된다.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이러한 때를 이용하여 민중을 선동하여 왕조 체제에서 소외되었던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반정부 세력의 정부 공격이 더욱 강화되었다.
마침내 1905년 1월 9일 일요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들 14만 명은 8시간 노동제와 최저임금제 등을 요구하며 왕궁을 향하여 평화적 시위를 하고 있었는데, 군인들이 발포하여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하였다. 유명한 ‘피의 일요일 사건’이다.
사건 후 수도의 노동자는 총파업에 들어갔고, 그것은 전국에 파급되었다. 5월에는 각지에서 군대와의 무력충돌이 있었고, 6월 말에는 포템킨호(號)의 반란이 일어나 정부에 큰 충격을 주었다. 10월에는 모스크바 철도 노동자의 동맹 파업은 전국적인 총파업으로 발전하여 혁명은 고조에 달하였다.
'고리키'라는 말은 '고통받는 자'라는 뜻으로 고난 속의 러시아 민중의 고통을 짊어지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1899년에는 그때까지 써놓았던 단편 등을 [기록과 소설]이라는 제목으로 출판, 일약 유명 작가가 되었다. 1901년에 발표하여 선풍을 일으킨 산문시 [바다제비의 노래]는 혁명의 횃불이 되었으며, 같은 해에 희곡 [소시민]을 발표해 극작가로서도 높은 평판을 얻었다. 안톤 체호프의 격려 편지를 받은 것도 이때쯤이고, 멀리서만 바라보던 톨스토이도 만날 수 있었다.
한 때 구두닦이였던 고리끼는 일약 유명 작가로 엄청난 신분상승을 했던 것이다. 그 뒤 혁명운동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나, 톨스토이의 항의로 석방되었다. 이때부터 지병인 폐결핵이 악화, 요양지를 찾아 전전하였다. 1902년 과학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선출되었으나, 혁명운동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황제에 의해 취소되었다.
1905년 처음으로 레닌을 만나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피의 일요일'에 가폰 신부가 이끄는 시위대에 적극 참가하여 체포되었으나, 국내외의 격렬한 항의로 곧 석방되었다. 1906년에는 당의 자금 모금을 위해 미국에 갔다가 귀국 거부를 당해, 할 수 없이 이탈리아의 카프리 섬에 정착하여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델이라 불리는 [어머니](1906)를 발표하였다.
소설 [어머니]는 공장 촌의 비위생적이고 무의미하며 희망이 없는 삶을 묘사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인 아들 ‘파벨’을 통해 점차적으로 깨어나는 어머니 ‘닐로브나’의 태도를 통해 민중의 위대함, 그리고 자각을 통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삶으로 변하는 전형을 보여준다. 술주정꾼 남편에게 맞고 살던 어머니에서 노동운동가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포용하는 위대한 어머니로의 진전은 고리끼가 말하고자 하는 어머니의 핵심일 것이다.
이 소설 속에서 ‘파벨’의 어머니 ‘닐로브나’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으며, 그저 보이지 않는 신에게만 의지할 뿐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닐로브나’는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소설 속에서 아들 ‘파벨’의 눈으로 그려지는 ‘닐로브나’의 모습은 그녀의 이러한 상태를 잘 나타내 준다.
억압과 폭력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 권리, 자유를 깨닫지 못하고 빼앗긴 상태에 있었다는 점에서 ‘닐로브나’는 당시 차르 지배 하에 있던 대다수의 러시아 민중들을 상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닐로브나’가 사회에 눈을 뜨고 노동운동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은 단순한 개인의 각성 과정이 아니라 러시아 민중의 깨달음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리끼는 러시아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민중상인 ‘닐로브나’가 열성적으로 노동운동에 헌신하는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러시아 민중들에게 더욱 큰 자극을 줄 수 있었다.
고리끼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의 중심이자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완성한 작가로서 문학사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고리키는 종래의 혁명적 소설가란 범주에서 벗어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시대의 황금기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물려받아, 다른 문학세계로의 일대 전환점을 이룬 다음, 후배들에게 넘겨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러시아의 혁명적인 상황의 이해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19세기 말은 봉건적인 차르 체제의 몰락과 함께 뒤늦게 들어온 자본주의의 위세가 점차로 강화되던 시기였다. 그리하여 사회의 부패는 심화되고 민중들의 삶은 극도로 피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주의가 대두하였고, 1905년 혁명 당시 프롤레타리아가 전면에 등장했던 것이다.
이러한 격동의 상황 속에서, 그의 문학은 강인한 주인공에 의한 사회의 부정. 부조리에 대한 공격, 인간 옹호를 목표로 하는 휴머니즘이 짙게 깔려있는 문학이다. 그는 출신성분이 말해주듯 주로 하층민의 밑바닥을 리얼하게 그려나갔는데, 바로 이 소설 [어머니]는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을 그린 전형적인 작품, 그의 작품세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 여전히 압제와 식민, 그리고 분노와 답답함 속에서 그저 견디고 있는 우리는, 그리고 나는,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다시 읽으며 19세기 말 러시아를 떠올린다. 그리하여 민중의 힘과 위대함, 그리고 결코 꺾이지 않는, 그리고 꺾을 수 없는 생명력을 떠올린다.